'잘생김도 탈·부착이 되나요. 아주 그냥 뒤집어썼네요….' '류준열, 네가 자꾸 그렇게 잘생김을 연기하면 어떡해. 내 눈에 문제 생겼나 걱정되잖아!'
지난 18일 밤 케이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13화가 끝나자마자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들이다. 같은 시각 트위터·페이스북엔 '응답하라 1988 보기 전과 보고 난 후'라는 제목의 두 그림이 '좋아요' 수백 건을 얻으며 떠돌아다녔다.
첫째 그림에 찢어진 눈과 튀어나온 입술을 지닌 남자가 있다면, 둘째 그림엔 이목구비가 큼직하니 서글서글하고 눈매가 애절한 '훈남'이 있다.
한 네티즌이 이 드라마 주인공인 배우 류준열을 처음 봤을 때와 드라마를 보고 난 후 인상을 각각 그린 것으로, 처음엔 못생겨 보였던 류준열이 방송이 거듭할수록 멋져 보인다고 표현한 것.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요즘 유행어를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이제 대세는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잘생김을 연기하는 남자'다. 최근 들어 폭발적 인기를 자랑하는 류준열(29), 김우빈(26) 같은 배우들의 공통점은 쌍꺼풀이 없고 예쁘장하기보단 남자답게 생겼다는 것이다. 영화 '군도' '암살' 등에 출연했던 배우 하정우(35)도 이 계열 배우로 꼽힌다.
처음 봤을 땐 어쩐지 못생긴 것 같기도 한데, 보면 볼수록 호감을 주는 얼굴이라는 것. 별성형외과 백형익 원장은 "몇 년 전만 해도 교과서처럼 정형화된 미남이 인기였다면, 요새는 다들 원하는 미남상도 제각각이다"라면서 "일부에서 진한 쌍꺼풀을 없애고 홑꺼풀 눈매를 만드는 식의 수술을 요구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잘생긴 사람"보단 "내 눈에 더 멋져 보이는 개성 있는 사람"이 성형시장에서조차 대세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과 함께 유행하는 신조어가 '못잘생김' 또는 '못매남'인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못잘생김'은 못생김과 잘생김의 합성어로 못생긴 것 같은데 잘생겨 보인다는 뜻. '못매남'은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의 줄임말이다.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은 그럼 언제부터 쓰인 걸까. 많은 이가 영국 BBC 드라마 '셜록(Sherlock)'의 주인공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39)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내 팬들이 이 말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미국·영국 드라마 전문가로 유명한 블로거 '비트닉'은 "셜록 시즌 2가 끝날 무렵인 2012년쯤부터 이 드라마 팬 사이에선 '컴버배치를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못생겼다'는 의견이 나돌았고, 그러다 2013년 5월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선 갑자기 너무 멋져 보여서 이때부터 다들 '컴버배치가 잘생김을 연기하고 있다'는 말을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 '구글'의 홍보팀도 "인터넷 게시물을 역추적해 보면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은 2013년 5월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나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