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부산방송본부 강모 기자는 1990년 1월 부산지검 검사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경찰관들이 심야 영업 단속을 나오자 "우리가 누군지 알고…"라며 뺨을 때린 사건을 보도했다. 해당 검사들은 검찰총장으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넉 달 후 검찰은 강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금품을 갈취했다는 혐의를 걸어 구속했다. 괘씸죄에 걸려 검찰의 보복 수사에 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피의자가 검찰에 밉보여 저지른 범죄에 비해 과도한 수사나 형량을 받았을 경우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괘씸죄는 법전(法典)에는 없는 죄명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괘씸죄'가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검찰에 잘못 보이면 표적 수사, 먼지떨이식 수사, 별건(別件) 수사에 시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검찰이 '삼성 세탁기 파손 사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조성진 LG전자 사장에 대해 항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11일 조 사장이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삼성전자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했다는 혐의에 대해 "세탁기를 손괴했다는 사실과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사 모두 기술 개발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인 만큼 상호 존중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말 삼성과 LG는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이미 합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 검찰이 항소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조 사장이 검찰의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고 수군댄다고 한다. 지난해 검찰이 조 사장을 소환했을 때 조 사장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소환 일자를 몇 차례 연기했다. 검찰의 추상같은 소환에 기업인이 감히 '연기'를 한 게 문제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조 사장을 출국 금지 조치하고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와 경남 창원 공장을 압수 수색하기도 했다. 세탁기 하나 부서졌느니 아니니 하는 분쟁치고는 과하다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검사도 사람인 이상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검찰 소환 일자를 연기한 측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가장 막강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검사들이 밖으로 드러나게 감정을 행사하면 법의 권위와 신뢰에 흠을 낸다. 검찰에도 득 될 것이 없다. 사람을 괴롭히고 겁줘서 얻는 위력은 생각보다 약하고 오래가지도 못한다. 검찰이 세탁기 파손 사건 수사와 공소 유지에 들인 시간과 인력을 다른 사건에 쏟았으면 더 많은 정의를 실현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