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인들 SNS에 자주 올라오는 동영상이 있다. EBS가 최근 방영한 다큐멘터리 '서울대A+의 조건'이다. 서울대에서 A+ 학점 받는 학생들의 공부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비법은 간단했다. 교수 숨소리까지 받아 적겠다는 각오로 강의 내용을 필기한 후 완벽하게 외워 시험 때 그대로 쓰는 것이다. 필기할 땐 요약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은 최대한 배제하고 교수가 한 말만 쓴다. 거의 강의 대본을 만드는 수준이다. 독창적인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게 한국 최고 우등생들의 공부 비법인 것이다.
2009년 이 연구를 시작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최우등생의 공부 비법을 찾아내 다른 학생에게도 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온 후 배포 계획을 접었다. 연구팀은 두 학기 연속해서 학점이 평균 4.0을 넘은 학생 46명을 인터뷰했다. 이어 서울대생 약 1200명을 조사했다. 필기를 열심히 할수록, 수업 태도가 수용적일수록 학점이 좋았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방식 그대로 하고 있었다. 문과·이과·예체능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이 소장은 이 결과를 지난해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란 책으로 펴냈다.
서울대 최우등생의 A학점 따기 비법 또 한 가지는 '의문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교수와 다른 의견은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답안에 쓰지 않는다.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예전에 중·고등학생 대상의 학원 강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시험을 잘 보려면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자기 생각을 하면 정답을 맞힐 수 없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이런 방식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왜 그대로 두는가. 교수 몇 명에게 물었다. 특이한 수업을 시도하면 수강 신청 취소가 속출하다 폐강될 수도 있다. 학생들이 평가의 공정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토론이나 발표도 꺼린다. 교수도 평가받는 시대에 똑같이 압력을 받으니, 결국 교수 좋고 학생 좋은 일방적 강의를 택하게 되더라고 했다.
EBS 다큐에 흥미로운 실험이 등장한다. 학생들을 12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펜과 물병, 강아지 장난감 등을 보여준다. 첫 번째 그룹에겐 "이건 펜, 이건 강아지 장난감"이라고 단정적으로 알려준다. 또 다른 그룹에겐 "이건 펜일 수도 있다. 강아지 장난감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여지를 두고 말해준다. 이어 물건 가격을 매겨 비싼 순서로 쓰라고 한다. 그러다 느닷없이 싼 것부터 먼저 쓰라고 한다. 학생들은 난감해한다. 뭔가 지울 게 없을까. 탁자 위에 놓인 고무로 만든 강아지 장난감을 지우개로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낸 학생이 단정적인 설명을 들은 쪽에선 한 명, 모호한 설명을 들은 쪽에선 6명이 나왔다.
여기 '정답의 역설'이 있다. 엘런 랭어 하버드대 교수는 "정답이 정해지면 사람들은 그 이상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아지 장난감이라고 꼭 집어 말해주면 생각이 거기서 멈춘다.
교수가 한 말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죽어라고 외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공부 방식은 한국을 똑 닮았다. 한국은 남들의 성공 방식을 찾아 달달 외워 따라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가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그런대로 통했다. 하지만 남이 안 간 길, 지도가 없는 길을 가려면 이제 그 방식으론 안 된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장후영 PD는 학생들도 이런 공부 방식에 한이 맺힌 것 같더라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왔지만 대학에 와서까지 그렇게 공부하는 건 문제라는 걸 아는 것이다. 비판적·창의적 사고 능력을 키워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은 공부는 그만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을 만드는 것. 한국이 10위권에서 더 도약할 묘책을 찾는 방법도 여기 맞닿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