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영화 '대호'는 호랑이와 호랑이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공동체 운명으로 얽힌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이며, 탐욕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닮은 '두 아비'에 관한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조선 최고의 포수로 이름을 떨쳤던 천만덕(최민식)은 지리산 오두막에서 약초를 캐며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과 살고 있다. 만덕의 가슴에 맺힌 한과 업을 알지 못하는 석은 더 이상 총을 들지 않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잡는 데 혈안이 된 일본군은 지리산으로 몰려온다. 지리산의 산군(山君), 조선 호랑이의 왕이라 불렸던 애꾸눈 호랑이 대호는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 일본군 고관(오스기 렌)은 대호의 가죽을 얻기 위해 조선 포수대를 압박한다. 하지만 몸무게 400kg, 길이 3m 80cm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에 용맹하고 영특한 대호는 자신을 뒤쫓는 인간들을 잔혹하게 덮친다.
대호에게 해묵은 원한을 품은 도포수 구경(정만식)은 대호의 짝과 새끼까지 죽이지만 대호를 잡지 못한다. 결국 구경 일행은 만덕을 찾아와 대호가 다니는 길목을 알려달라 부탁하고, 천만덕은 그들을 단호하게 꾸짖어 돌려보낸다. 그런 아버지가 답답한 석은 포상금을 얻어 혼례를 치를 순진한 생각으로 포수대에 합류한다.
일본군까지 동원된 최후의 호랑이 사냥, 마침내 위용을 드러낸 대호. 비정한 운명은 끝내 천만덕의 손에 총자루를 들리고야 만다.
'대호'에서 호랑이와 인간의 대결 같은 스펙터클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오락영화적 쾌감도 크진 않다. 하지만 울림이 꽤 깊다. 호랑이와 조선포수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동력 삼아 느리지만 힘 있게 전진하는 이야기는 지리산의 묵직한 산세를 닮았다.
이 영화에서 대호는 인간의 대립항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끝없이 탐했으나 결코 정복되지 않는 어떠한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로 읽힌다. 문명에 의해 위협받는 전통적 가치관일 수도 있고, 공존·공생에 대한 역설일 수도 있다. 호랑이가 지닌 상징성을 시대상에 대입하면 일제에 의해 핍박받은 민족 혼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로 흐르면서 천만덕과 대호의 질긴 인연이 베일을 벗는데, 서로가 인정하는 유일한 적수였던 둘은 닮은꼴 운명으로 얽혀 있다. 잡을 것만 잡는 사냥꾼 천만덕처럼, 대호도 생존 이외의 불필요한 사냥을 하지 않는 기품을 지녔다. 총을 내려놓은 포수와 죽음 위기에 몰린 대호.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둘의 얼굴엔 똑같은 무게의 회한이 내려앉아 있다. 그리고 둘 다 새끼를 목숨처럼 지킨 '아비'였다.
박훈정 감독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호'는 사라진 것들을 스크린에 부활시켜 그들을 위로한다. 먹먹함이 오래 남는다. 선 굵은 연출 덕분이다.
천만덕을 연기한 최민식은 말이 필요 없다. 관객들이 대호에게서 감정과 인격을 느낄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최민식의 공이다. 눈빛만으로 모든 것이 설득된다.
정만식과 김상호의 호흡도 좋다. 정만식은 맨 앞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을 발휘했고, 김상호는 얼어붙은 설산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천만덕의 아들 석을 연기한 성유빈은 '대호'가 첫 손에 꼽을 수확이자 한국영화의 발견이다. 10대 나이답지 않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능청으로 영화의 숨통을 틔우며 소소한 재미와 웃음을 책임진다. 연기력도 발군이다.
무엇보다 최민식이 "우리 주연배우 김대호 씨"라고 불렀던 호랑이 CG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한국영화의 기술적 성취다. 간혹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눈에 띄긴 하지만 몰입에 크게 방해되진 않는다. 호랑이의 시선을 대신한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호랑이 CG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눈 쌓인 지리산의 풍광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깊은 여운을 품고 있다. 대호의 구슬픈 포효와 천만덕의 짙은 회한이 지리산 골짜기를 처연하게 울린다. 그 울림이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가닿을 수 있을 것 같다. 16일 개봉.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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