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 15, PH 20개 가능한가요" "낮 1시 청량리 맘모스호텔 앞에서 헤드폰을 귀에 꽂은 채 서 있으시오."

1983년 1월 검거된 국내 최대 음란서적 판매책이 중간 상인들과 나눈 교신 내용이다. 'PB'는 '플레이보이'지, 'PH'는 '펜트하우스'지를 뜻하는 은어다. 당시 언론은 "마치 반공(反共) 드라마에 나오는 북괴 간첩들 접선 모습 비슷하다"고 했다. 수십만권을 밀매한 범인의 창고에선 4t 트럭 2대 분량의 '빨간책'이 압수됐다. 1990년엔 주한 미군 관련 시설 창고에 있던 '플레이보이' 등 성인용 책 23만5천권을 몰래 팔아온 사람들이 붙잡히기도 했다.

플레이보이 지가 판금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잡지 모델로 화제를 모은 이승희씨가 1997년 5월 가진 방한 사인회엔 수백명이 몰렸다.

광복 70년간 플레이보이 잡지만큼 오랜 세월 '지하'에서 대량 유통된 책도 드물다. 공식적으론 금서(禁書)지만 볼 사람은 다 봤다. 서울 명동 청계천 등 뒷골목에선 미국 가격보다 몇 배나 비싸게 팔렸다. 베트남전 때는 '참전 미군들이 가장 좋아한 잡지' 1위로 뽑혔다. 공산군 참호 속에서도 이 잡지가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 플레이보이 지에 공개적 환호를 보내긴 어려웠지만, 재미 교포 이승희씨가 1993년 동양인 최초로 이 잡지 모델이 되자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공개적 찬사들이 이어졌다. 플레이보이 지를 음란하다며 금지한 사회가, 그 잡지를 통해 우뚝 선 여성을 칭송하는 건 이율배반이란 지적이 나왔다. 1997년 그녀가 방한하자 '이승희 신드롬'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도색잡지 모델일 뿐'이란 견해가 맞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조선일보 1997년 4월 2일자).

1953년 창간된 플레이보이는 사실 장 폴 사르트르, 스티브 잡스, 스티븐 호킹의 인터뷰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같은 '고상한' 읽을거리도 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제호는 도색 잡지의 대명사였다. 국내법에 맞춘 '수위' 조절이 가능한 '플레이보이 한국판'을 창간하려다 당국으로부터 퇴짜를 받은 사람이 발간 허용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1998년 패소했다. 우리 법원은 '플레이보이란 이름 자체가 갖는 음란물로서의 상징성' 때문에 안 된다고 판결했다. 내년 3월호부터 누드 사진을 그만 싣겠다고 밝힌 플레이보이 지는 곧 발간될 2016년 1·2월호에 게재할 마지막 누드 스타가 '파멜라 앤더슨'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세상에서 여성 누드 매거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이버 포르노가 넘치는 시대에 오프라인 누드의 사망선고일 뿐이다. 온라인의 숱한 플레이보이 지들이 고스란히 그 역할을 이어간다. 뒷골목 좌판 앞에서 행인들 눈치 살피다 빨간 잡지 한 권 집어들던 일들은 많은 한국 남성들의 젊은 날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