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고3 연희를 처음 만났다. 자폐를 가진 남동생을 너무 예뻐해서 어디든 같이 다니는 아이였다. 아버지가 트럭 운전을 하는 어려운 형편에도 성적이 전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동생을 보살피며 의학에 관심을 갖게 돼 생명과학과에 대입 원서를 냈다.
연희의 자기소개서가 궁금해 한번 보여달라고 했다. '지원 동기'에 '어려서부터 생물 공부를 좋아했다'고만 적혀 있었다. 동생의 장애를 밝히기 싫었던 것인지 조심스레 물어보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게 자기소개서에 쓸 만큼 중요한 얘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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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실패가 얼마나 귀한 이야기 재료가 되는지, 우리는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 학교와 사회는 '남들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야 한다' '실수하면 끝장이다'라고 끊임없이 다그쳤다. 역경과 악조건은 창피한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숨겨야 했다. 그러니 고통을 잘 견뎌내고 맛본 성공의 경험이 평생 재산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한다.
그때 동생 얘기를 밝혀 쓰고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닌 연희는 '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되는 연구를 하겠다'며 의학전문대학원에 도전해 한 달 전 합격했다. 실패를 성공으로 이끈 이야기를 멋지게 적어낸 단비 역시 대기업 인턴으로 선발돼 바쁘게 일을 배우고 있다. 이 씩씩하고 기특한 젊은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짜릿한 인생 드라마를 써나갈까. 정말 기대가 된다. / 최수현 기자 ▷[2030 프리즘] 자기소개서를 빛나게 쓰는 법
온나라가 자기소개서 때문에 난리다. 대학을 가든, 직장을 가든 가장 중요한 것은 학점도 아니고 스펙도 아닌 자기소개서다. 이전엔 스펙을 높이려고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면, 요즘은 자기소개서에 인상깊은 한줄을 더 써 넣으려고 온갖 일을 찾아 헤맨다.
지원자의 인성과 자질, 도전 의식 등을 다양하게 엿볼 수 있어 점점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생긴 현상이다.
최근 한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26)씨는 작년 여름방학 때 일요일마다 오이 50개를 들고 청계산에 올라가 개당 1000원씩 받고 팔았다. 이력서란에 이색 경험을 적어넣기 위해서였다. 오이는 청계산 입구의 한 마트에서 50개에 3만5000원(개당 700원)을 주고 샀고 하루 평균 수익이 1만원을 넘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김씨는 "자기소개서에는 이를 과장해 '오이를 도매로 싸게 산 뒤 개당 2000원에 팔아서 큰 수익을 올렸다'고 썼다"고 말했다.
서울 신촌의 한 취업 컨설팅업체는 방학이 되면 여학생들을 모아 운동 동아리를 만들어준다. 기업들이 활동적 이미지의 여성을 좋아한다는 이유에서다. 평생 제대로 된 운동 한 번 안 해본 여학생들은 이 업체를 통해 소프트볼·야구·마라톤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적인 스펙'을 만들어 간다. ▷청계산서 오이 팔고… 바텐더 자격증 따고… 헌법소원 내고… 학생들, 튀는 스펙 찾아 생고생
['한국판 파브르 소년' 뽑았더니… 풍뎅이 소녀, 철새 소년만 몰려]
튀는 스펙을 찾아 생고생한 경험담을 적으면 훌륭한 자기소개서가 완성 되는 걸까? 과연 합격이 보장 되는 걸까?
자소서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차별화된 팁을 얻고 싶어하는 심리는 도서 시장에도 반영되어서 크게 히트한 책들도 여럿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조민혁의 '기적의 자소서'가 일러주는 핵심은 이렇다.
①당신이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채용 담당자가 듣고 싶어하는 경험을 '이야기'로 들려줘라 ②강점만 어필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③핵심을 앞세우는 두괄식으로 승부하라 ④개인보다는 팀, 협업의 경험을 보여줘라 ⑤어떤 경험을 왜 이야기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입사 후의 미래와 연결해라 등이다.
▷청춘의 필수 과목, 가장 절박한 문학… '자소서'
[깨달음 얻은 '나만의 경험', 입체감 있게 서술해야]
[차별된 이야기+구체적 사례… 자신의 성장 과정 보여줘라]
기업 100 대상 자기 소개서 분석해보니
경쟁과 협력 가운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GS건설)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하림)
"최근에 해 본 게임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라"(이스트소프트)
대졸 신입사원 공채 지원자의 자기소개서에서 등장한 실제 질문이다. 본지가 대·중견·중소기업 100개를 대상으로 입사 지원서 기재 항목과 자기소개서 문항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기업이 지원자의 인성(人性)과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색다른 내용을 묻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입사 희망기업 정보와 개인 가치관 등 물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입사 희망 기업 업무에 대한 관심과 경험·기본 지식 측정이다.
'증권업의 미래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라'(HMC투자증권)(HMC투자증권 연봉정보 바로가기), '엔씨소프트에서 인턴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회사 가치와 부합하는 경험이 있는지를 기재하라'(엔씨소프트)(엔씨소프트 연봉정보 바로가기)는 식이 대표적이다..
물류 기업인 한진(한진 연봉정보 바로가기)은 '물류 사업에 대한 가치관'을 묻고, BGF리테일은 "편의점에 적용 가능한 PB(자체 브랜드) 상품에 대해 기술하라"는 문항이 있다.
취업·이직 전문기업인 패스파인더의 김재호 대표는 "이런 질문은 평소 지원 기업과 업무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답변하기 어렵다"며 "지원자의 역량 평가를 중시하는 최근 채용 흐름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특징은 지원자의 인성과 가치관, 인생관을 묻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 "본인이 생각하는 '보다 나은 삶의 완성'에 대해 설명하라" 같은 경우다.
세 번째는 개인 기호(嗜好)와 취향 평가다. 대신증권(대신증권 연봉정보 바로가기)·대웅제약(대웅제약 연봉정보 바로가기)·탑엔지니어링(탑엔지니어링 연봉정보 바로가기)은 흡연 여부를 기재하라고 요구한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금연에 성공하면 연간 100만원 정도의 금연 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묻는 것일 뿐, 흡연 여부로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경동그룹은 본적(本籍) 기재란이 있고, 빙그레(빙그레 연봉정보 바로가기)와 대원산업은 지원자의 종교를 묻는다. 부영그룹과 동부저축은행은 개인 재산이 얼마인지와 주거 형태가 월세인지 전세인지 여부를 묻는다. 이스트소프트는 과거 병력(病歷) 사항 같은 민감한 내용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기업 100곳 자기소개서 분석해보니
[[한현우의 동서남북] 삼성 '직무적합성 평가'에서 떨어지지 않는 법]
[[일자리가 뜬다] 합격하는 자기소개서, 떨어지는 자기소개서]
휴지통으로 날아가는 자기소개서는
1. 모방이 창조다?… 베끼거나 짜깁기한 소개서
2. 솔직하게 고백한다?… 영업직이 "내성적", 재무담당이 "덜렁"
3. 개념없이 친한 척?… 수고하세여… ^^ 이모티콘 써 놓은 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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