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청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의 한 사진학원. 대학 사진학과 입시생이나 전문 사진가를 꿈꾸는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그런데 18일 이 사진학원에선 경찰관 30여명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월요일부터 경찰서가 아닌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학원에서 경찰관들이 배우는 것은 불법·폭력 시위 현장을 촬영하는 채증(採證) 기법이다. 교육은 2주 과정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불법·폭력 시위자들의 모습을 흔들림 없이 촬영하고, 밤에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도 시위자 얼굴을 식별 가능하도록 사진에 담아내는 게 핵심이라고 한다.
경찰이 '사진 과외 교습'까지 받는 이유는 불법·폭력 시위 현장에서 전문 시위꾼들의 혐의를 입증할 채증 자료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전문 시위꾼들은 수사기관에서 혐의를 부인하거나 철저히 묵비권을 행사한다"며 "경찰의 현장 채증은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무기"라고 말했다.
채증 자료는 재판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검찰은 혐의 입증을 위해 법정에서 폭력 시위 현장이 담긴 동영상을 직접 틀어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폭력 시위 혐의 입증에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낡은 채증 장비 교체 예산으로 내년에 22억5800만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야당은 경찰의 과잉 진압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증액분 18억원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은 "신규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내구연한이 지났거나 고장이 난 노후 장비를 교체하려는 것"이라며 "매년 예산 부족으로 장비를 충분히 교체하지 못해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채증 활동에 차질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