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르 문학이 요즘 소설 출판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장르 문학은 추리소설, 스릴러, 스파이 소설, SF, 판타지, 로맨스 등 특정 장르에 속한 대중문학을 뜻한다. 순수문학과는 철저하게 분리된 채 문단의 변경에 자리해왔다. 그러나 출판사들이 올해 들어 독자들이 국내 창작물을 외면하는 현상이 더 심해지자 영화 제작과 연결된 장르 소설을 기획하거나, 영화감독과 시나리오작가의 소설 창작을 반기고 있다. 범죄 소설 분야에서도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정치·사회사를 아우르는 추리소설이나 세태 풍자소설이 두드러지고 있다. 주제는 리얼리즘 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스토리텔링엔 장르 소설의 재미를 덧씌우는 것.
소설가 김탁환이 영상물 기획자 이원태와 함께 쓴 소설 '조선 마술사'(민음사)는 개봉을 앞둔 영화의 원작이다. 종이책 출간 전에 SNS를 통해 연재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맞게 간명한 문장을 구사하면서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을 실험해 봤다고 한다.
'조선 마술사'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청나라 마술사 묘사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조선에도 그러한 마술로 인기를 끈 광대가 있었다고 상상했다. 그 광대가 궁중 바깥으로 몰래 나온 옹주를 만나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맺는 이야기다. 광대가 청나라의 마술사에 맞서 요술 대결을 벌이는 것을 비롯해 영상화를 염두에 둔 행동과 사건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삶은 마술이 아니지만 마술은 삶의 일부'라는 첫 문장이 소설의 주제를 압축한다.
한국노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우태현의 첫 장편 소설 '적, 너는 나의 용기'(새움출판사)는 보기 드물게 정치와 이념의 문제를 다룬 추리소설이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진보 성향의 여성 변호사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뒤 잇달아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범인을 찾아내는 소설이다. 범죄를 통해 사회의 이면(裏面)을 캐는 소설처럼 시작하지만 점차 이야기는 정치판의 권력투쟁과 음모를 담은 이야기로 변형된다. 단테의 시 '신곡'과 임화의 시가 암호처럼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국 소설 '다빈치코드'와 '단테 클럽'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한국적 정치와 이념 상황을 가미한 것. 소설은 주사파(主思派) 세력을 공격하지만, '종북 척결'을 외치는 반공 이데올로기도 비판한다. 80년대 학생운동 세대의 입장에서 쓴 사회파 추리소설인 셈이다.
단편영화 감독 김대현이 낸 장편 '목등일기'(다산책방)는 고구려의 최고위직 좌보(左輔)를 지낸 목등(穆登)이 남겼다는 일기를 다룬 소설이다. 고구려에서 여성이 권력을 쟁취할 뻔한 때가 있었지만 아쉽게 실패했고 그 기록도 모두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현실과 허구를 헷갈리게 하는 서술 방식이 가짜 책을 다룬 소설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책 맨 뒤에 "이 책은, 물론 소설이다"고 밝혔다.
한때 서울 강남의 벤처기업에서 일했다는 작가 정민의 장편 '어둠의 양보'(나무옆의자)는 벤처 거품이 일었다가 꺼진 시대를 그려냈다. 냉소, 조롱, 해학이 섞인 작가의 입심이 쉼 없이 발동하는 세태 풍자소설이다. 어쩌다 벤처기업가가 된 두 청년이 권력과 탐욕, 섹스로 뒤섞인 요지경 세상에서 모험을 벌이는 과정이 액션 영화처럼 숨 가쁘게 전개된다. 정권 교체로 요직에 오른 국정원 직원이 벤처기업에 정부 지원금을 연결해주고 이익을 챙기면서 벌어지는 욕망의 분출 소동이다. 본격문학의 풍자 정신과 장르 문학의 유머 감각이 기발한 발상을 거쳐 융합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