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원룸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이모(여·24)씨는 최근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CCTV'를 현관문 밖 복도 천장에 달았다. 검은 반구(半球) 안에서 렌즈가 수시로 빨갛게 빛을 내는 돔형 CCTV다. 하지만 이 CCTV는 실물을 본떠 만든 모형으로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씨의 남자친구는 "이거라도 있어야 가짜로 보이지 않는다"며 'CCTV 작동 중'이라는 글씨가 쓰인 스티커도 모형 근처에 붙였다. 이씨는 "진짜 CCTV는 아니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덴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한 기능은 없지만, 겉모습은 실제와 비슷한 '가짜' CCTV가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을 노린 납치·강도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주택이나 원룸, 연립주택에 혼자 사는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커졌지만,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진짜 CCTV를 설치하기엔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모형 CCTV를 찾고 있는 것이다.

오픈마켓 사이트인 'G마켓'에 따르면 올해(1~10월 기준) '진짜 CCTV' 판매량은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3년에 비해 10% 감소했으나 모형 CCTV 판매량은 오히려 13% 증가했다. 시중엔 돔형, 원통형, 사각형 등 다양한 모형 CCTV가 출시돼 있다. 별 기능 없이 돔 안에 있는 붉은 램프만 깜빡거리는 기본형은 3000~5000원 정도 하고, 전선이 달려 있고 물체의 움직임을 감지해 붉은 램프가 깜빡거리는 모델은 2만원을 넘는다.

인터넷에서 모형 CCTV를 파는 한 업자는 "카메라 촬영·녹화 기능이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로 모형 CCTV를 산다'고 했다. 현행법상 진짜 CCTV를 설치하게 되면 녹화가 되고 있다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진짜처럼 그럴싸하게 위장하려고 대개 'CCTV 작동 중'이나 '감시용 카메라 녹화 중' 등의 문구가 쓰인 스티커와 묶음으로 팔린다고 한다.

전문 보안업체 로고를 붙여놓고 무인경비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처럼 꾸미는 사람들도 있다. 대전 중구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는 장모(35)씨는 지난해부터 가게 문에 파란 바탕에 업체명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한 보안업체 로고를 붙여놨다. 이 로고는 원래 보안업체에서 무인경비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에게만 지급하는 것이다. 보안업체에 무인경비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장씨는 이 로고를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5000원을 주고 샀다.

장씨는 "도둑을 막아야겠는데 한 달에 6만~10만원 정도 하는 무인경비 서비스를 신청하기엔 부담스러워 로고를 구해 붙였다"고 했다. 이런 '가짜 로고'는 직접 인쇄업체에 의뢰해 만들거나, 인터넷 중고거래로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중소 보안업체에선 회사 홍보를 위해 서비스 가입을 하지 않은 상점이나 주택에 먼저 붙여주기도 한다고 한다. 한 보안업체 직원은 "보안업체 직원들은 가짜인지 아닌지 알지만,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냉정히 (로고를) 떼버리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모형 CCTV나 보안업체 로고를 붙여두는 게 범죄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범죄자 중 '가짜' 구별법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만큼 지나치게 믿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