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아랍어 난이도가) 틀린 그림 찾기 수준이라고 하던데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진석범(18)군은 수능을 두 달 앞둔 지난 9월에야 처음 제2외국어 과목 책을 폈다. 진군이 선택한 과목은 아랍어다. 아랍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서 사용한다. 처음 접한 사람은 알파벳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전국 고등학교 중 아랍어가 정식 교과과정에 포함된 곳은 울산외고 한 곳뿐이다. 그런데 아랍어를 수능 제2외국어로 선택한 수험생이 올해 4만6800여명이다. 전체 제2외국어 응시자의 절반이 넘는 51.5%다.

이렇게 많은 수험생이 아랍어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1등급 받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아랍어를 가르치는 서울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에서 만난 최모(19)군은 "아랍어는 아무도 배운 적 없으니까 모두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다"며 "프랑스어나 독일어, 일본어 같은 다른 외국어 과목보다 난도가 낮아 알파벳과 단어 몇 개만 알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수능 원점수가 다른 과목에 비해 낮다. 입시학원 추정으로는 지난해 아랍어에서 50점 만점에 23점을 받으면 1등급이었다. 1등급 커트라인이 48점인 한문이나 47점인 중국어·일본어와 큰 차이가 난다. 2등급 격차는 더 크다. 지난해 아랍어 2등급 커트라인은 18점이었다. 3분의 1만 맞혀도 수능 2등급인 셈이다.

외고생들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 대치동에서 아랍어 단기 특강을 들었다는 한모(18)양은 "외고 아이들이 워낙 제2외국어 점수가 좋아서 걔들이 안하는 걸 선택하다 보니 아랍어·베트남어·한문 정도밖에 없다"고 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중국어는 전국 31개 외고 대부분에서 가르친다. 3년 내내 제2외국어를 배우는 외고생들과의 경쟁을 피하려다 보니 아랍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외고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양과 같은 강의를 듣는 김영진(18)군은 "제2외국어 선택을 하면 외고생들이랑 같은 교실에서 수능을 보게 된다"며 "외고생들 수험실이 쉬는 시간에 떠드는 애들도 없고 긴장감이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제2외국어 과목 중 최다 응시자 수 자리를 지키던 아랍어가 작년과 재작년 수능 때 위기를 맞았다. 베트남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4학년도부터 수능 과목으로 편입된 베트남어에 작년 3만5000여명이, 재작년엔 2만9000여명이 몰렸다. 아랍어가 도입된 지난 2005학년도 수능 같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당시 '쉬워도 너무 쉬운' 아랍어 때문에 '전부 다 찍어도 1등급', '터번 쓴 사람만 골라도 정답'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첫해 530여명에 불과했던 응시자 수는 5년 뒤인 2010년 5만1000여명으로 늘었다.

이렇다 보니 요령이나 찍기 기술이 등장했다. 학원가에선 '3일 완성 아랍어'라든지 '12시간 만에 아랍어 1등급 만들기' 강좌를 개설해 운영한다. 12시간 완성반을 운영하는 A학원 원장은 "12시간 동안 알파벳을 외우게 하고 단어도 그림처럼 각인시키면 1등급은 충분하다"고 했다. 80만원대의 금액을 부르며 과외 학생을 모집하기도 한다. 수험생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아랍어 찍기 요령'을 묻는 글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수능 로또'였던 아랍어 시험도 달라지고 있다. 2007년부터 아랍어를 가르친 구현정(37)씨는 "반짝 공부해선 아랍어 1등급을 받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2005년 당시 너무 쉬운 아랍어 교과서 때문에 문제 난도가 낮았지만 2010년 교과서가 바뀐 이후 어렵게 출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씨는 "당시엔 한글로 아랍권 문화를 설명해 맞히거나 아주 기본적인 아랍어를 물었지만 지금은 지문이 길어지고 필수 어휘도 300에서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대성학원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우희정씨도 "아랍어 수업은 연초인 2월 중순부터 시작한다"며 "단기에 반짝 해서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