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던 여가수 A에게 당시 연예계 대부로 통하던 '최 회장님'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몇 곡 히트한다 해도 가수가 큰돈 만지기 어려운 1980년대 후반이었다. "집 한 채 장만해줄까?" '최 회장님' 제의에 A는 "음반 한 장만 내게 해달라"고 했다. '최 회장님'은 인간적으로 연예인을 대했다고 한다. 이리역 화물열차 폭발 사고 때 기절한 여가수를 구해낸 것에 감동해 만년 삼류 코미디언을 스타로 끌어올린 이가 그였다. 그가 운영하던 프로덕션은 한국 첫 연예기획사로 꼽힌다.

▶'최 회장님'의 다른 얼굴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범죄와의 전쟁'이 속도를 낼 때였다. 1991년 살인 혐의를 받고 있던 조직폭력단 이리 배차장파 두목에게서 검찰은 '최 회장님'이 살인을 사주했다는 진술을 얻어냈다. 그는 '조폭 위에 군림하는 자금줄'로 지목됐다. 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4년 뒤 풀려났다. 출소 후 '최 회장님'과 A는 정식 부부가 됐다.

▶조폭이 연예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라고 한다. 연예계의 성가신 일을 처리해주던 '해결사'에서 '투자자'로 변신한 것이다. 한때 가요계에서 힘을 쓰던 어느 기획사 대표는 '현역 조폭'으로 유명했다. 소속 연예인이나 매니저가 기획사를 옮기려 하면 팔이나 다리 중 하나가 부러져 나왔다. 2000년에는 여의도 기획사 사무실에서 연예인 이적을 둘러싸고 조폭끼리 난투를 벌이기도 했다.

▶연예계의 조폭 시대는 뜻밖의 일로 조기에 황혼을 맞았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음원(音源)을 비롯한 연예 콘텐츠 유통 구조가 혁명적으로 변하면서 시대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연예계 관계자는 "다운로드라는 말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는 조폭 사장이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조폭들이 헤매고 있을 때 전문 경영인과 손잡고 시장을 장악해 들어간 새 그룹이 이수만·양현석 같은 연예인 출신이다.

▶하지만 조폭은 여전히 밤 업소를 매개로 연예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울 수밖에 없는' 밤 세계의 속성 때문이다. 엊그제 칠성파 부두목 결혼식에 연예인 두 명이 사회와 축가를 한 것도 그런 공생 관계의 단면일 것이다. 일본에선 연예계와 야쿠자의 고질적 결탁을 막기 위해 4년 전 민영방송연맹이 조폭과 관계있는 연예인을 방송에서 퇴출시키는 계약을 맺었다. 실제로 '국민 MC'로 유명한 연예인이 야쿠자 간부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쫓겨난 일도 있다. 우리도 이번 일을 '시범 케이스'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