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숭인동 114 서울 센터. 전화를 걸어온 노인이 다짜고짜 "왜 은행이 내 전화를 안 받느냐. 내 돈을 다 빼가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은행 상담사와 전화 연결이 안 되자, 114에 전화를 걸어 대신 화풀이를 한 것이다. 114 상담사는 숨을 한 번 가다듬더니 "은행에 전화를 건 대기자가 많아 그런 것 같으니 조금 뒤에 다시 전화를 해보시라"고 했다. 이 노인은 그 뒤로도 114 상담사에게 10여 분간 하소연을 쏟아 놓다가 전화를 끊었다.

후배들이 준 선물이에요 - 2일 오후 서울 숭인동 114 서울센터에서 김이임(왼쪽), 김명희(오른쪽) 상담사가 후배들에게 선물받은 풍선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114 상담사로 각각 38년, 37년을 근무한 이들은 다음 달 31일 정년퇴직한다.

하루 24시간, 365일 아무 때나 걸어도 "힘내세요. 고객님!" 하며 반겨주는 전화가 있다. 각종 전화번호와 주소, 간단한 생활 정보까지 안내해주는 114다. 1935년 10월 1일 경성중앙전화국이 처음 전화번호 안내를 시작하면서 출범한 114는 올해로 서비스 시작 80년을 맞았다. 114는 체신부와 한국통신(KT)을 거쳐 지금은 KTIS와 KTCS 등 2개 회사에서 맡고 있다. 한때 '무엇이든 물어보는 곳'으로 통했던 114에서 각각 38년과 37년을 근무하고 다음 달 31일 정년퇴직하는 상담사 김이임(58)씨와 김명희(58)씨는 "114사에 입사해 지금껏 받은 전화만 1000만건이 넘을 것"이라며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 고객들의 상담 전화 내용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1970~90년대엔 어디선가 교통사고가 나거나 화재가 발생하면, 상황을 문의하는 전화가 경찰서나 소방서 못지않게 114에 몰렸다. 언론사 기자들도 급할 땐 114 상담사에게 사고 내용을 취재할 정도였다고 한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분주히 전화번호 안내를 하던 김이임씨에게 성수대교 붕괴를 알리는 시민들의 제보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가족과 지인의 생사를 알기 위해 다급하게 근처 학교·직장 연락처를 묻는 이가 많았다" 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114는 시민들이 불만과 분노를 털어놓는 '배출구'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경기에서 지면 전화를 걸어 '왜 경기를 그렇게밖에 못하느냐'고 무작정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다반사다. 1990년대 중반에 인기를 끌던 한 TV 토론 방영 시간만 되면 패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시청자들 때문에 114 전화통에 불이 났다. 당시에는 '고객보다 먼저 전화를 끊어선 안 된다'는 회사 원칙 때문에 전화를 먼저 끊을 수도 없었다. 114 상담사가 한국의 대표적 감정 노동자로 꼽히는 이유다.

최근엔 사람들이 '속도'에 집착한다. 114 상담사가 전화번호와 간단한 생활 정보를 묻는 고객과 통화하는 시간은 1건당 평균 17초.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빠른 속도에 익숙한 세대에겐 10여초도 참기 어려운 시간이 됐다고 한다. 김이임씨는 "상호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선 일단 빨리 찾아달라는 전화를 하루에도 수십 통 받는다"며 "고객이 잘못한 거지만 보통은 내가 '죄송하다. 빨리 확인해 보겠다'며 넘어간다"고 했다.

40년 가까이 수화기 너머 얼굴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응대해온 두 사람은 이제 목소리만 들어도 상대의 기분을 파악할 정도로 '감정 전문가'가 됐다. 요즘 114에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에게선 "외로움이 묻어난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김이임씨는 "한번은 젊은이가 죽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왔는데, '힘든 시절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날도 온다'고 위로했더니 마지막엔 감사하다고 끊더라"며 "고객에게 감정을 노출해선 안 되지만 고객과 교감하는 뿌듯함도 있다"고 했다. 기자와 짧은 인터뷰를 마친 두 상담사는 "고객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