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주시에 사는 최광민(37)씨는 지난 2011년 타고 다니던 BMW 승용차를 팔았다. 대신 250만원짜리 중고차를 샀다. 현대 갤로퍼였다. 1994년 제작, 주행거리 20만㎞, 6인승짜리였다. 이웃집 70대 남자가 폐차하려던 걸 간신히 살렸다. 1000만원을 들여 몇 가지 부품을 바꾸고 애지중지 몰았다. 최씨는 "요즘 SUV에는 없는 매력이 갤로퍼에 있다"고 했다. 이후에도 최씨는 갤로퍼만 2대 더 샀다. 작년 7월 390만원에 구매한 순정(개조하지 않은) 갤로퍼는 운 좋게도 주행거리가 비교적 짧은 12만㎞였다. 최씨는 이 차에 진주색으로 도색을 하고 카시트부터 타이어, 범퍼, 후방 카메라 등 장비 수십 가지를 장착해 꾸몄다. 구입가의 5배가 넘는 2000여만원이 들었다. 최씨는 "클래식한 디자인과 옛날 자동차만의 묵직함이 갤로퍼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국내에 SUV 바람을 몰고 온 현대자동차의 갤로퍼가 중고차 시장에서 유행이다. 자동차 온라인 쇼핑몰 보배드림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판매된 순정 갤로퍼 가격은 120만~180만원이었다. 4년이 지났는데 가격은 두 배가 됐다. 현재 보배드림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갤로퍼 순정 매물은 최저 가격이 250만원이다. 각종 부품을 더해 차를 복원하거나 취향대로 바꾸는 리스토어(restore) 차량은 1300만원 안팎이다. 출시한 지 25년이 다 된 차다. 보배드림 관계자는 "20년이 넘은 차는 보통 폐차한다"며 "(오래된 차 중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건 갤로퍼가 유일하다"고 했다.
갤로퍼를 모는 사람들이 꼽는 가장 큰 매력은 투박한 디자인이다. 지난해 9월 갤로퍼를 산 회사원 황경일(39)씨는 "몸체가 각진 데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디자인"이라며 "옛날 스타일 그대로라 끌린다"고 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갤로퍼의 전신은 1982년 출시된 일본 미쓰비시의 파제로다. 파제로가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자 미쓰비시와 기술협력을 맺은 현대자동차가 국내 생산 계약을 했고 우리나라에선 1991년부터 현대정공이 만들었다. 파제로를 그대로 들여왔으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초기 갤로퍼 디자인은 실제로 서른세 살인 셈이다.
튼튼하단 점도 또 다른 매력이다. 우리나라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박종서 전 국민대 공업디자인과 명예교수는 "요즘 나오는 차는 모노코크(monocoque·일체형) 보디인데 갤로퍼는 바닥 뼈대 위에 몸통을 얹은 프레임 형태로 더 견고하고 강직하다"고 말했다. 박 전 교수가 자주 모는 차 역시 2001년식 갤로퍼다. 그는 "갤로퍼는 기계식이라 전자식인 요즘 자동차들에 비해 훨씬 묵직하다"고 했다. 리스토어한 갤로퍼로 지난 2014년 서울오토살롱에서 대상을 받은 최영훈(34)씨도 "차가 오래됐어도 기계식 자동차라 닦고 기름 치고 조이면 잔고장이 나지 않는다"며 "고장이 나더라도 고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지난 2001년 생긴 갤로퍼 동호회 '갤럽이노'는 최근 4년 새 신규 가입 회원만 1만명이 넘는다. 또 다른 갤로퍼 동호회 '가리온'과 '갤라인' 등을 포함하면 동호회 회원 수가 6만명에 달한다. '갤럽이노' 회원 이건영씨는 "2003년 갤로퍼가 단종되기 전엔 새 차 구입 정보를 얻으려 가입했지만 요즘은 중고 갤로퍼를 찾거나 리스토어하려는 신입 회원이 대부분"이라며 "정기 모임을 비롯한 오프라인 모임 때마다 회원 수십 명이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