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시장기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환기시키는가. 그 영육복합체는 유년의 천막 학교에서 미군들한테 얻어먹은 레이션(전투식량)의 맛까지도 흔들어 깨운다. 이 궁상 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노동자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몽로의 박찬일 셰프.

글 쓰는 것과 요리하는 것, 펜과 팬을 사용하는 이 작업에 공통점이 있다면, 투여된 노동의 정직성이다. 자음과 모음을 이리저리 굴려 한 줄 문장을 만들어내는 행위와 각종 식재료을 배합해 한 접시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행위. 지식 노동과 육체노동이 결합한 이 정직하고 아름다운 ‘막노동’을 동시에 해내는 자가 박찬일이다.

그는 기자 일을 하면서 만난 글 스승에겐 ‘억지로 치장하지 말고 함부로 뽐내지 마라’고 배웠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만난 요리 스승에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요리를 만들라’고 배웠다.

그래서 글은 칼같이 쓰고, 음식은 문학적으로 조리한다. ‘동해안 피문어와 홍천 찰옥수수 찜을 곁들인 라비올리’나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과 청양고추, 봄 담양 죽순 찜의 파스타’ 같은 한국 산천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한 서양 요리 명명법은 박찬일 이후 강남 일대 레스토랑에 유행처럼 번졌다.

언론이 에드워드 권에게 최초의 스타 셰프의 왕관을 수여하던 2009년 당시, 박찬일은 청담동 요식업계에서 새 바람을 일으킨 ‘알짜’ 스타였다. 그는 토속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뚜또베네와 가로수길의 트라토리아 논나를 거쳐, 올해 초 즐겁게 칩거하듯, 서교동 골목 문학과 지성사 건물 지하에 주점 스타일의 레스토랑 ‘몽로’를 열었다.

일복을 자처한 또 한 사람의 글 쓰는 요리사 이유석과 함께 박찬일의 서교동 아지트 몽로를 찾았다. 택시 기사가 주소를 입력하고도 엉뚱한 곳에 떨어뜨려 놓는 바람에, 음식 배달 오토바이 청년의 도움으로 간신히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후미진 골목에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몽로의 로케이션은 거의 레지스탕스의 은신처 수준이었다.

서교동 후미진 골목 안 요리 주점 몽로의 로케이션은 거의 레지스탕스의 지하 은신처 수준이었다.

스타 셰프 전성시대에 보인, 그의 이런 행보는 매우 박찬일다워 보였다. 과유불급이라 할 정도로 통제할 수 없는 이 ‘미식 과식 탐식의 시대’에, 가난한 자들의 식탐과 불행을 그린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서 본뜬 ‘몽로’라는 이름은 그래서 마치 레지스탕스 동지들 사이의 암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따라 조리복을 입은 그는 더욱 노동자다운 분위기를 풍긴다. 주방에선 커다란 들통에 베이스가 될 국물이 끓고 있고, 홀 한쪽에선 저녁 전쟁을 앞둔 직원들이 냄비를 한가운데 두고 맵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조선 비즈(이하 비즈) 몽로(夢路)는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에서 딴 이름으로 알고 있어요.

박찬일(이하 찬일) 그 소설 보면 주인공들이 삶에 희망이 없어요. 세탁부, 함석쟁이 등 삶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돈 벌면 목로주점 가서 먹고 마시는 데 생활비를 다 써요. 토끼 고기 조림에 와인 마시고 주정하고, 그런 식탐과 가난에 대한 장면 묘사가 즐비해요. 저는 거기서 나온 음식을 만들어서 이런저런 그릇에 또 담아봐요.

저는 다큐멘터리도 자주 보는 데, 참치잡이 어선에서 금방 잡은 생선을 철판에 구워 먹으면, 그거 보면서 또 연구를 하게 돼요.

이유석(이하 유석) 좋은 재료를 터프하게 먹는 게 미식의 상급이지요.

찬일 사실 궁중 요리, 제사 음식, 서양 요리가 세공이 많아진 건 높은 사람들, 돈 많은 사람에게 공들여 해 바쳐야 해서 그래요. 그런데 복잡하게 만든다고 더 맛있느냐? 아니에요. 푸아그라도 혈관 잘 제어하고 뜨거운 팬에 지져 먹는 게 가장 맛있어요.

◆최고의 요리는 삼겹살에 김치

비즈 그러면 최고의 요리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찬일 삼겹살에 김치를 당해낼 요리는 없어요. 고기 요리는 그대로 철판에 구워 먹는 게 최고예요. 수비드로 저온 요리해도 그 맛을 못 당해요. 닭은 숯불로 조리하고, 소고기는 좋은 소금에 찍어 먹고, 간단한 즉석요리를 능가하는 레시피를 만들기는 힘들어요. 레스토랑은 테이블 위의 직화가 안 되니까, 다른 방식으로 조리할 수밖에 없죠.

유석 저는 속초 방파제에서 숯불에 소금 뿌린 청어를 구워 먹었는데 기막히게 맛있었던 기억이 나요.

찬일 추억에 버무려진 음식, 특별히 결핍 상태에서 먹은 음식은 그 애절함 때문에 인상적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죠. 미식이 단지 맛있는 음식 그 자체라면 그건 멋이 없어요.

옛날에 저희 어머니는 아들인 저를 편애하셨어요. 달걀이 너무 귀했는데, 제 밥공기 밑에만 달걀을 넣어주셨어요. 음식 차별만큼 서러운 게 없어서, 누나가 째려보곤 했어요. 제가 그런 식의 음식 사치를 누렸어요. 어머니는 그렇게 ‘오직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셨는데, 제가 펜 잡고 기자 하다가 요리한다고 해서 무척 심란해 하셨어요.

비즈 지금은 아들이 요리사가 된 걸 좋아하시나요?

찬일 지금도 여전히 험한 막노동으로 생각하시죠(웃음).

비즈 박찬일 세프는 음식과 노동을 항상 결부시켜 생각하는데, 가격을 정할 때는 어떤 고민을 주로 하나요?

찬일 이 닭튀김 요리 한 접시가 2만 8천원이에요. 그런데 10명 중 3명은 가격 대비 양이 적다고 해요. 닭은 메뉴를 짜기가 가장 어려워요. 사람들은 치킨집 닭, 찜닭과 평행선으로 비교해요. 치킨집 과당 경쟁 때문이죠.

이 닭가슴살도 바삭하게 튀기려면 세공이 많이 들어가요. 가슴살을 라이스페이퍼로 하나하나 싸서 튀긴 거예요. 일부러 정키한 맛을 내려고 설탕 넣고 파프리카 넣고 간장으로 짜게 만들었어요. 꾸스꾸스를 묻혀서 식감도 다채롭게 했죠. 그런데 가격 비교에선 그런 디테일이 무시당하죠.

유석 닭은 가격저항선이 강한 데 비해, 사람들이 또 오리에는 관대해요.

청담동의 토속 이탈리안 레스토랑 뚜또베네 시절부터 명성을 날렸던 박찬일 셰프의 터프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파스타와 닭요리.

찬일 이 파스타 면은 달걀을 40개 넣고 생 바질을 넣어서 손반죽으로 뽑은 거예요. 얼마나 치대느냐에 따라 꼬들꼬들함이 확연히 달라져요. 정직한 거죠. 그래서 할머니들 손칼국수를 5천 원에 싸게 먹는 건 사실 되게 미안한 거예요.

그런데 또 이유석이나 최현석, 에드워드 권 같은 잘 생긴 셰프들이 멋진 셔츠를 입고 푸아그라를 요리해서 주면 그 레스토랑의 음식값에는 섹시함에 대한 대가도 들어있어요. 그들의 쇼를 보려고 그 레스토랑에 온 거니까요. 벨에포크 시대가 그랬어요. 그 시절 고급 레스토랑은 사교의 명소였어요. 어떤 사교계 여성이 오는 지, 어떤 공작, 백작이 드나드는지로 평가를 받았죠.

◆음식도 결국 복제 산업이 최후의 승자

유석 몇 달 전에 제가 라면 한 상자를 들고 몽로를 찾아왔어요. 끼니 때우기 힘든 셰프들에겐 라면이 좋은 요깃거리거든요(웃음).

찬일 편의점에서 산 너구리부터 일본 된장 라멘까지 푸짐했어요. 집에서 아내가 국을 안 끓여줘서 사리곰탕면을 한 개 끓여 먹었어요. 라면 먹으면서 현대의 식품 과학 기술이 정말 놀랍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대체 새우도 안 넣고 어떻게 새우 맛을 낼까? 고기도 안 넣고 첨가물만으로 고기 맛을 내다니."

비즈 미래엔 알약을 먹으며 상상의 식사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요.

찬일 음식 매트릭스의 시대… 과학의 승리예요. 캔커피를 사서 마시면 진짜 커피가 아니라 커피 향을 마시는 거예요. 바나나우유에 바나나가 없듯이. 우리 모두 가상의 음식을 먹고 있는 거죠.

유석 트뤼프 오일에도 트뤼프 향만 있어요.

찬일 이성도 인형을 데리고 살아요. 포르노 보는 대신 음식 포르노를 보면서요. 자장면 먹으면서 푸아그라 나오는 화면을 보고 상상의 식사를 하죠. 입맛도 하향 평준화되고 음식도 결국 복제 산업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거에요. 연복이 형(이연복 셰프)도 탕수육으로 홈쇼핑에서 억대를 벌었더군요(웃음).

파스타는 손반죽의 탄력이 팽팽하게 느껴져 식감이 좋고, 닭요리는 바삭함과 짭짤함이 미묘하게 어우러져 중독적인 매력이 있다.

◆요리는 유투브나 요리책 보고 지금도 배우는 중

유석 저도 특허받은 수란을 급식업체 통해 대량 공급할 예정이에요(웃음).

찬일 사람들은 수란 보다는 맥반석에 더 관심이 있지 않나요(웃음)? 저도 박찬일의 파스타 소스 이런 걸 팔아야 하는데, 제가 그런 데는 재주가 없어요. 산업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죠. 저도 요리할 때 샘표 간장을 써요. 누가 권숙수(권우중 셰프)처럼 우리고 내린 간장을 쓸 수 있겠어요?

비즈 밥도 그래요. 식당의 웬만한 밥보다 햅반이 가장 맛있어요.

찬일 한 끼에 6천 원을 받는 식당 주인은 햅반보다 더 좋은 밥을 제공할 수가 없어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그래도 테이블 단가가 3~4만 원 이상하니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요. 그렇다고 신라호텔 카페테리아에서 3만 원 받는 비빔밥은 폭리냐? 또 그렇진 않아요. 시설, 관리, 서비스, 위생, 재료 그런 걸 따지면 합당한 가격이에요.

유석 그런데 메뉴는 어떻게 개발하세요?

찬일 지금도 저는 유투브 보고 요리책 보고 배워요. 우린 서양 요리하는 사람이고, 서양인들이 확실히 요리를 잘해요. 저희는 잘 베끼는 거죠. 라따뚜이도 채소를 따로 볶아서 합쳐야 한다고 하면, 그 기본을 잘 따르는 거예요. 제 요리 솜씨도 평균적인 수준이에요. 기본적인 콘셉트만 하고 어려운 요리는 못 해요. 다만 파스타 반죽할 때 5분 치대는 것보다, 10분 치대는 게 맛있다는 건 알죠.

세프가 되려면 좋은 음식 경험이 있어야 한다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테크닉은 배우면 돼요. 미식은 훈련을 통해서 습득되는 거예요. 절대 후각도 틀릴 때가 많아요. 갓 벤 풀냄새, 서양 배 냄새, 헛간 냄새, 고양이 오줌 냄새, 구스베리 냄새 그런 걸 분별하는 게, 한국인으로는 정말 쉽지 않아요. 영국의 와인 마스터 지니 조도 고도의 훈련으로 그 경지에 이른 거지요.

◆음식의 본령은 쾌락, 당을 올려 기분을 좋게하는 것

비즈 얼마 전 기고문을 통해 스타 셰프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내보였지요? TV 속에서 웃고 있는 화려한 요리사를 보고 있을, 실제 닭을 튀기고 밥을 하는 다수의 노동자 또한 셰프인걸 잊지 말라는 직언이 인상적이었어요.

찬일 제가 총대를 멘 거죠. 셰프들 인기가 요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지만, 요리사는 통상적으로 힘든 직업이에요. 유행하는 프로게이머도 연예인도 아니에요. 스타 셰프로 꿈을 키워주는 거, 그것도 필요하지만, 생활의 터전에 과잉 욕망이 개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해요.

아무래도 음식은 시각적인 대상이니까,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서 올리기 좋지요. 내 식 행위를 전시하면서, 삶의 누추함을 커버하는 거예요. 그렇게 노출이 빈번해지면서 요리사가 수혜를 입은 건 사실이에요.

저도 요즘 수요미식회를 하고 있는데, 정통 미식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게 본질은 예능이에요. 황교익하고 내가 메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예인들의 ‘구라’가 메인인 거죠. 대중들은 이렇게 정키한 치킨을 좋아하지, 허브를 넣은 로스트 치킨을 좋아하겠어요?

책으로 치면, 대중들이 좋아하는 건 박경리의 소설이 아니라 김진명의 소설이에요. 소설의 본령은 이야기고, 그리고 쓰임은 시간을 때우는 거예요. 인류를 구원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음식의 본령도 쾌락이에요. 거기서 인문교양 지식은 부가적인 거죠.

먹어서 당을 올려 기분 좋게 만드는 게 우선, 그다음에 천천히 가능하면 건강에 좋으면 좋겠고, 또 지구를 덜 괴롭히면서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에 이르게 돼요. 단세포적이에요. 음식은 철저하게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문제에요. 엄마 음식은 범주가 또 달라요. 그건 문학의 계열에 들어가죠.

비즈 의식주에서 요즘 식이 두드러지는 건 쾌락과 가장 가까워서란 말이지요?

찬일 맞아요. 옷은 시스템이 복잡해요. 몸을 가리고 추위를 막는다는 본질적 기능을 제한하거나 거꾸로 갈 때 아방가르드가 나오죠. 음식에서 아방가르드라고 하면, 좀 더 복잡해요. 분자 요리가 될 수도 있고, 썩힌 음식이 될 수도 있죠.

◆청담동 레스토랑 미식 인구는 2천 명, 그 사람들이 돌고 돌아

비즈 레스토랑 문화는 흥하는데, 왜 본격적인 음식 드라마나 영화는 안될까요?

찬일 말 했듯이 음식을 깊이 파면 사람들이 안 봐요. 드라마 '파스타'도 셰프와의 연애 이야기지 음식 얘기가 아니에요. 액체 농도를 밀도 있게 만든 수란에 트뤼프 오일을 섞어 줘도, 사람들은 비리다고 다시 익혀달라고 해요. 그런 게 먹히면 떼돈을 벌죠. 대중들은 그런 음식을 어려워해요.

미식 마니아는 좋아하겠지만, 그 인구가 많지 않아요. 청담동 레스토랑 멤버십은 2천 명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새로 생긴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면서 미식을 즐기죠. 오픈해서 하루 50명씩 40일 동안 만석이고, 그다음부터는 손님이 줄어드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언젠가는 압구정동에 셰프들이 오는 심야 막걸리집을 내고 싶다는 박찬일 셰프.

유석 레스토랑 손님은 돌고 돈다는 걸 저도 피부로 느껴요. 어느 날 새로 오픈한 식당 가보면 저희 단골들이 우르르 앉아 있거든요(웃음).

찬일 이유석 세프가 상권이 저물어가는 압구정동에서 5년을 버틴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루이쌍끄가 서양 요릿집으로 중심을 잡고 있으니까 한식 파인 다이닝 권숙수도 들어가고 맹기용 셰프도 들어간 거예요(웃음).

비즈 몽로엔 어떤 사람들이 오나요?

찬일 몽로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주로 오죠. 동호회 식당 같아요(웃음). 가끔 세련된 사람들이 와서 비싼 술 팔아주면 감사하죠. 그래도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타고 와서 발레 파킹 해달라는 그런 문화는 아니에요.

비즈 여건이 된다면 어디에서 어떤 식당을 차리고 싶으세요?

찬일 나는 압구정동에 셰프들이 오는 심야 막걸릿집을 하는 게 꿈이에요. 막걸리 1천 2백 원인데, 그걸 유리병에 담아 서빙하면 1만 2천 원이거든요(웃음). 냉면도 팔고 빈대떡도 팔고 막소주도 팔고 그런 집을 내고 싶어요.

◆전쟁터의 전투 식량과 수용소의 수프가 가장 입맛 당겨

비즈 셰프가 되기 전에 음식이 나온 영화나 소설 중에 특별히 인상적이 었던 게 있나요?

유석 저는 어릴 때 영화 '머나먼 정글'을 보면, 롤링스톤즈 배경 음악으로 군인들이 먹는 장면이 그렇게 섹시해 보였어요. 그래 봤자 전투 끝나고, 잠깐 쭈그리고 앉아 깡통 레이션 먹는 건데, 외국애들 구강이 너무 섹시하게 움직였던 모습이 기억이 나요.

찬일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보면 수프가 그렇게 맛있게 다가와요. 사할린 강제수용소에서 작업 후에 추위에 배고픔을 달래주는 게 수프에요. 그런데 사실 그 수프라는 게 교도소 식량이니 그냥 풀죽에 불과하거든요.

생선 몇 마리로 비린내 조금 풍기고, 말라비틀어진 감자에 양파, 꿩 다리뼈가 슬쩍 스치고 지나간… 그런데 그 수프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에 목숨을 걸고 싸우잖아요. 신기한 건 그걸 읽으면서 침이 넘어가요. 먹고 싶어서. 루이 14세의 송아지 구이 요리는 안 당기는 데, 이상하게도 그런 음식들은 당긴단 말이지요.

전쟁터의 군인들이 먹는 전투 식량과 수용소 죄수들이 먹는 수프에서 진짜 허기를 느낀다는 박찬일과 이유석. 두 사람은 글쓰는 요리사로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한다.

저녁 6시가 다가오자, 박찬일은 손님이 들이닥칠 거라며 서둘러 일어섰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인구가 줄어들면 식당도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태도와, “압구정동에 심야 막걸리 식당을 내고 싶다”는 소시민적인 낭만을 동시에 오고갔다.

그렇게 지식 노동자이자 육체 노동자인 박찬일의 얼굴은 통달과 비통 사이 어딘가의 ‘늙음의 표정’을 짓고 있다. 스타이면서 스타가 아닌, 스타로서 스타를 비판해야 하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그 아이러니한 표정은 일본의 감독 겸 배우 기타노 다케시를 연상시켰다.

엄청나게 웃기는 국민 코미디언이자 동시에 비정한 누아르 영화감독, 염세주의자를 바탕에 깐 희극인을 닮은 박찬일. 먹는다는 것의 쾌락과 먹어야 한다는 것의 슬픔을 필사적으로 통합해내려는 우리 시대의 애통하고 애절한 요리사!

참고로 라이스 페이퍼로 감싸고 꾸스꾸스를 두른 치킨 요리와 볶은 고기를 얹은 파스타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 노동조합과 경영진이 웃통 벗고 악수한 것 같은 짜릿한 동맹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