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주말뉴스부장

도색잡지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 도색(桃色)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색정적인 일'이라고 풀이돼 있었고 색정(色情)은 '성적 욕구를 가지는 마음'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사전에서 성적(性的) 단어를 찾아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쓰여 있는 그 문구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던 나이였다.

학교 앞 골목에서 친구들과 함께 문제의 잡지를 펼쳤을 때, 엄청난 자극에 갑자기 노출된 뇌하수체가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바람에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왁스로 광택 낸 듯 하얀 피부와 어머니의 금반지처럼 노랗게 빛나는 머리카락이며, 문제집에 떨군 코피처럼 붉은 입술들…. 오, 그 황홀한 복숭앗빛(桃色) 화보집!

고교 1학년 때였던가, 같은 반 친구가 학교에 가져온 도색잡지를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빌려 보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대담하게도 한낮에 집에서 그 책을 보다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신 아버지한테 들켜버렸다. 구세대(舊世代)이므로 구식(舊式)이었던 아버지는 그것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보고 "마당에 나가서 태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안방 창문을 열고 마당에서 벌어지는 도색잡지 화형식을 끝까지 지켜보셨다. 아깝고 창피하고 약간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가운데 가장 큰 걱정은 다음 날 잡지 주인인 친구한테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나중에 내 아들이 도색잡지를 본다면 절대로 태워버리라고 하지 않겠다. 그저 '재미있냐, 짜식아'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썼다.

도색잡지를 몇 번 보게 되자 세운상가 2층에서 판다는 비디오테이프로 자연히 관심이 쏠렸다. 몇 주치 용돈을 모아 세운상가까지는 갔으나 도저히 2층에 올라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약 밀매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2층을 바라보며 주머니 속 지폐들을 만지작거리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느 날 용감한 친구 하나가 세운상가에서 비디오테이프를 사는 데 성공했다. 불법 복제한 비디오여서 겉에는 아무런 표지나 글씨도 없었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안방에 두던 집이 많아서(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그 친구는 비디오를 사고도 한동안 내용물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친구네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신'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 토요일 낮, 친구 중에서도 정예 몇 명만을 집으로 초대한 친구는 안방 TV를 켜고 문제의 비디오를 플레이어에 밀어 넣었다. 당시 최신 유행이던 '프런트 로딩' 방식의 기계로, 비디오를 앞에서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것이었다. 그 기계가 비디오를 꿀꺽 하고 삼킬 때, 우리의 침도 꾸울꺽 넘어갔다.

비디오는 재생되지 않았다. '이젝트(eject)'를 눌러 꺼내려 했으나 나오지도 않았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비디오를 거꾸로 넣었기 때문이다. 이제 비디오를 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그 비디오를 빼내야만 했다. 친구는 젓가락도 넣어보고 핀셋도 쑤셔봤으나 원망스러운 비디오테이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용 설명서에 적혀 있는 애프터서비스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수리 기사는 월요일에나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영웅에서 졸지에 가련한 신세로 전락한 친구를 버려둔 채 뿔뿔이 흩어졌다. 그다음 월요일 학교에서 만난 친구는 "비디오를 태워버리지는 않았지만 아버지한테 압수당했다"고 말했다.

도색잡지의 대명사인 미국 '플레이보이'가 창간 62년 만에 누드 사진을 없애기로 했다. 지금의 40~60대 한국 남자 상당수에게 '첫 경험'을 선사했던 복숭앗빛 살굿빛의 그 잡지가 존재 이유를 포기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회사 스콧 플랜더스 대표이사는 "이제 클릭 한 번이면 모든 종류의 성적 이미지를 공짜로 볼 수 있게 됐다"며 "누드 사진은 퇴물(passe)이 되었다"고 말했다. 창간호에 메릴린 먼로의 누드를 실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플레이보이가 인터넷 선정성에 백기 투항한 셈이다.

인터넷뿐인가. TV를 틀면 그 옛날 메릴린 먼로보다 훨씬 더 어린 여자아이들이, 입었지만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차림으로 나와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흔든다. 중고생이 아니라 멀쩡한 회사원, 교수, 의사, 공무원들이 몰카를 찍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라는 자신만의 도색잡지를 만드는 시대다. 이제 골목이나 골방에서 보는 도색잡지나 비디오는 애교 차원을 넘어 타임캡슐에 들어갈 신세다.

그래서 89세 나이에도 편집장(editor in chief) 직함을 버리지 않고 있는 플레이보이 창업주 휴 헤프너 옹에게 한마디 인사를 건네고 싶은 것이다. 모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시대에 신문기자로 살면서, 처음으로 당신에게 연민을 느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