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밤 경기도의 한 대학교 야외 운동장. 가을 축제가 한창인 중앙 무대 주변에 자리 잡은 학과별, 동아리별로 운영하는 포장마차식 주점들의 호객 행위가 한창이었다. 한 주점에선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학생들이 토끼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하고 남학생들에게 달라붙어 팔짱을 끼며 "우리 주점이 제일 맛있어요"라고 잡아끌었다. 일부 주점에선 '아찔한 밤' 등 유흥업소에서도 잘 쓰지 않는 글귀가 적힌 간판을 내걸었다. 어린이 사진을 붙여놓은 메뉴판은 성(性)과 관련한 노골적 표현이 가득했다. 나쵸는 '오빠 고추 나쵸', 라면은 '오늘 내 고추라면?' 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여학생이 얼굴을 찡그리며 "메뉴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주점을 운영하는 학생은 "왜요, 재밌지 않아요?"라며 낄낄거렸다. 그 옆의 한 주점은 양주를 상품으로 내걸고 커플 섹시 댄스 대회를 한다고 했다.
요즘 대학가 가을 축제장은 선정성(煽情性) 경쟁의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 이달 초 서울의 한 대학 축제장 간이음식점에선 메뉴판에 '오빠가 꽂아준 어묵탕' '그대의 짧고 단단한 소시지' 같은 삼류 에로비디오물을 연상시키는 글로 도배가 돼 있었다.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주점 측은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전국 각 대학에서 이런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전북의 한 대학 축제 때 일부 대학생이 걸 그룹 멤버의 속옷 차림 사진과 함께 '모텔까지 나를 부축해줘' '빨간 속옷 속에 감춰진 두부 같은 속살'이란 글귀를 적은 주점 홍보 포스터를 걸었다. 걸 그룹 소속사는 최근 관련 학생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여대생들이 보기에 아찔한 옷차림으로 손님을 모으거나 서빙하는 일도 잦다. 주로 가슴골이 파인 옷이나 짧은 치마, 몸매가 드러나는 교복, 기모노(일본 전통의상), 치파오(중국 전통의상) 등을 입고 호객에 나선다. 학생들 사이에선 고학년생들이 저학년 중에서 예쁘장한 여학생들을 골라 이런 옷을 입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 초 한 대학교 축제에 갔던 주모(여·25)씨는 "여학생들이 축제랍시고 술을 팔면서 손바닥만 한 천으로 간신히 가린 옷을 입고 나왔다"고 했다. 복학생 장모(26)씨는 "여학생들이 '오빠'라고 부르며 잡아끌어 당황했다"고 했다.
일부에선 대학생 특유의 장난으로 보아넘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적잖은 대학에서 축제 때마다 성희롱 시비가 불거질 만큼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서울 한 대학 축제 때 주점에서 서빙을 했다는 한 여학생은 SNS에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그랬을지 모르지만, 남학생들의 성희롱에 시달려 참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봄 서울대 축제에선 학생 사회자가 커플 댄스를 춘 이들에게 "끝나고 모텔로 가라"고 해 학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남학생도 구경 갈 수 있는 여자대학 축제에서도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고 한다. 한 여자대학 총학생회는 지난해 축제 때 '가슴골 보이는 상의를 입으면 안 된다' '허벅지 50% 이하 길이의 치마는 금지한다' 등 주점을 운영하는 학생에 대한 복장 지침을 정해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내게 했다.
한국 대학 축제를 '성(性)과 술'이 지배하게 된 것은 대학 문화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이다. 배은경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교수는 "바람직한 대학 축제 문화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학생 사회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