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전일(全日)제로 일할 수 있는 성실한 입법보조원을 모집합니다."

지난 8월 24일 국회 홈페이지에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정기 국회 개원(開院)을 앞두고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도울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이 직원이 맡을 업무는 자료 조사, 통계 분석, 질의서 작성 등 의원의 의정 활동과 관련된 업무 전반에 걸쳐 있었다. "국회 업무 경력자를 우대한다"는 내용도 덧붙여, 국정감사 준비에 투입할 '즉시 전력감'을 찾는 셈이었다. 그러나 이 직원이 받는 급여는 식비와 교통비를 제외하면 '0원'이다.



한 야당 의원실에서 올린 이 채용 공고에 네티즌들은 "평소 청년·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목소리 높이더니 실상은 열정 페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실은 지난 29일 SNS에서 한 네티즌이 이런 문제 제기를 하자, 바로 채용 공고를 삭제하고 "관례대로 채용 공고를 올렸을 뿐이며 국정감사가 끝나면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해명했다.

취업 시장에서 '을(乙)'의 위치에 있는 청년들에 대한 자본의 부당한 대우를 비판해온 국회에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직원이 있다. 입법보조원이라 이름 붙은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은 국회사무처에서 임금을 주는 유급(有給) 보좌진을 9명 고용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입법보조원 2명을 추가로 둘 수 있다. 다만 입법보조원은 국회사무처 규정이 없어 국가에서 임금을 주지 않는다. 의원이 직접 고용 주체로 나서 임금을 줄 수 있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급(無給)으로 입법보조원을 쓰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일하는 입법보조원은 342명에 달한다.

본지가 올 초부터 9월 말까지 국회 입법보조원 채용 공고 48건을 살펴봤더니 "(월 120만원 안팎인) 인턴 비서에 준하는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밝힌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실의 공고를 제외하곤 모두 구체적 급여를 밝히지 않거나 교통비·식비 외에는 급여를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대부분의 의원실은 "경력 증명서를 발급해준다"며 입법보조원 경력으로 '스펙'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내걸고 있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실은 입법보조원 채용 공고에서 "우리 의원실 입법보조원들은 다 취업이 잘됐다"며 "이 자리를 사회생활의 발판으로 삼고 싶은 분들은 지원하라"고 했다. 사실상 무급이지만 이들이 맡는 일은 입법 활동 지원, SNS 홍보 등 일반 직원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채용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수십 명의 청년들이 지원해 수일 만에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해 "청년들이 경험이나 경력을 쌓기 위해 무급임을 알고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대다수 청년은 "국회마저도 취업이 힘든 청년들 처지를 이용해 갑(甲)질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한 국회의원실에서 무급으로 일했던 조모(여·23)씨는 "경험이 될까 해서 지원했지만, 식권(食券)만 주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시켜 너무하다 싶었다"며 "정치인들이 청년 취업을 힘들게 하고선 '취업에 도움 된다'며 선심 쓰듯 부리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