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묘(宗廟) 돌담길을 따라 창경궁 방향으로 가다보면 골목 구석에 깔끔한 2층 한옥이 있다. 대로변 높은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김옥현(67) 전(前) 동덕여대 디지털공예과 교수와 딸 양지나(37)씨가 운영하는 '한국색동박물관'이다. 딸이 관장이고, 엄마는 고문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이곳에 30년간 전통 섬유 공예인 색동을 연구해온 김 교수가 모아온 사주보·복주머니·돌복·혼례복·보자기·노리개 같은 300점 넘는 색동 공예품이 있다.

"'색(色)'은 한자지만 '동'은 우리말이에요. 이어붙인다는 뜻이죠. 조선시대 만든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삼국시대부터라고 해요. 고구려 벽화를 봐도 귀족 부인들이 입은 치마·저고리에 색동을 사용한 걸 볼 수 있죠." 적게 잡아도 15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셈이다.

어머니 김옥현(오른쪽) 교수는 산업디자인전에 색동 작품들을 내면서 색동과 본격 인연을 맺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딸 양지나 관장도 어머니와 함께 색동을 활용한 옷과 소품들을 만든다.

색동에는 오방색(五方色)이 사용된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을 가리키는 청(靑)·백(白)·적(赤)·흑(黑) 네 가지 색에 가운데를 뜻하는 황색(黃色)까지 다섯이다. 김 교수는 "우리 조상은 방향마다 색이 있고 음양오행과 관련 있다고 믿었다"며 "그래서 돌이나 혼례 때 무병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며 다섯 색 천을 붙여 색동옷을 지어 입은 것"이라고 했다.

"10년쯤 전에 일본풍 패션 브랜드인 겐조(KENZO)에서 색동을 가져다 썼더군요. 이러다가 색동을 일본에 뺏기게 생겼다 싶어 아찔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색동을 우리 실생활로 가져와야겠구나." 그는 이후 지갑·옷·소파 덮개 등 생활용품에 색동을 적용한 상품을 디자인해 만들고 모으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 함께 소매를 걷어붙인 게 둘째 딸 양지나씨다. 딸 역시 처음부터 색동에 관심이 컸던 건 아니다.

전환점은 캘리포니아의 패션디자인학교 FIDM에 입학한 후였다. "건국대에서 한복 디자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간 학교였어요. 실용 의상을 디자인하면서 색동을 활용한 옷들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색동의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딸은 요즘 색동으로 유아복을 만들어 파는 한편, 직접 만든 색동옷과 액세서리들을 모아 전시회도 열고 있다.

모녀가 박물관까지 연 것은 색동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고 싶어서다. 둘은 하루 30명씩 초등학생을 받아 색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복주머니 디자인과 같은 창의적 교육도 한다. 딸은 신구대에서도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녀는 오는 11월 11일을 첫 '색동의 날'로 선포하고 색동을 알리는 캠페인도 벌일 생각이다. '11월 11일'을 택한 것은 여러 색의 천이 1자(字)로 늘어선 색동이 '1111'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모녀가 말했다. "색동은 철학이 담긴 우리 고유의 섬유 예술입니다. 우리 모두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더 많이 사용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