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 24일 이석채 전 KT 회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수사 착수 703일, 재판 시작 529일 만에 나온 결론이었다.

법원은 “위험 부담을 안고 투자했다가 실패했다는 이유로 경영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경영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밝혀,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경종을 울렸다.

이 전 회장의 변호인단은 홍기태, 윤태호, 이인재, 박현성, 이정화, 박시영, 서동후, 박태준 변호사 등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이 주축이다. 특히 ‘골키퍼’로 나선 홍 변호사(53·사법연수원 17기)의 활약이 두드려졌다는 평가다.

검찰은 공격 포인트는 이 전 회장이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이었다. 2011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등 벤처 기업들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특경법상 배임)가 그것이다.

홍 변호사는 “이 전 회장이 훨씬 더 큰 규모의 인수 계약을 모두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반박했다. 홍 변호사는 “BC카드, 금호렌터카, 스카이라이프 등의 인수는 모두 성공이었다”며 “문제된 3개 기업은 소규모 벤처기업들이었고, 인수 대금도 미미했다는 점을 재판부에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홍기태 변호사

검찰은 두 번째 공격 포인트는 비자금 조성. 이 전 회장이 2009년 1월부터 2013년 9월까지 KT 내부 규정이나 이사회 결의 없이 임원들에게 상여금 명목으로 27억5000만원을 지급한 뒤 11억7000만원을 돌려받아 경조사비 등 개인 용도로 썼다는 주장이다.

홍 변호사는 “KT와 비슷한 규모의 회사 경영진이 사용한 비용과 비교해 적은 액수였다"며 “검찰이 비자금 조성을 의심한 부분도 하나 하나 용처를 규명, 개인적인 사용이 없었다는 점을 밝혔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변호인단이 특별히 잘했다기 보다는 진상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했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홍 변호사는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출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뒤 2013년 2월 태평양에 합류했다.

현재 ‘박태환 선수 도핑 사건’에서 금지 약물을 주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 T병원 김모 원장의 변호를 맡고 있으며,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검찰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2013년 10월 22일 1차 압수수색에 이어 같은 해 11월 KT 사옥, 임직원, 관계자 자택 등 21곳을 압수수색하며 이 전 회장을 압박했다.

이 전 회장은 임기를 2년 앞둔 2013년 11월 회장에서 물러났다. 검찰은 같은 해 12월 이 전 회장을 9일 동안 이틀에 한 번 꼴로 4차례나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 6개월 만인 2014년 4월 15일 이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지만, 지난 24일 ‘완패'했다.

당시 ‘부장검사 주임검사제’를 도입한 검찰은 이 전 회장 사건 수사의 주임 검사로 평검사가 아닌 부장 검사를 투입했다.

이에 따라 이헌상 검사와 양호산 검사가 진행하던 수사는 2013년 1월 검찰 정기 인사 이후 장기석(44‧26기)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현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3부장)이 직접했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장 부장검사는 2000년 4월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 사법연수원 교수, 전주지검 형사2부장,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을 거쳐 현재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비자금 의혹 사건, 김양 전 부산저축은행 부회장 배임 사건 등을 맡았다.

장기석 수원지검 안양지청 부장검사

대형 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수십 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6개월 동안 이 전 회장 주변을 탈탈 턴 것에 비하면 배임‧횡령 액수가 적어 의아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 검사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한 뒤 경영 전략에 따라 투자했다가 실패했다면 당연히 경영상 판단 범위에 포함되지만, 사업 전망이 나쁘고 실무자들이 모두 반대하는 투자를 무리하게 추진했다면 배임죄 법리에 따라 기소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