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강(江)과 맞닿은 '존 로저슨' 거리. 지난 2일 이곳의 카페 '소라'에선 즉석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핀테크(금융과 IT의 결합) 기업 '릭렉스 페이먼트'의 개리 콘로이 부사장이 옆 테이블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개발한 새로운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설명을 토해내자, 옆 테이블의 한 사람이 "보안 시스템이 성공의 관건일 것"이라는 의견을 즉석에서 내놨다. 잠시 후 기자와 만난 콘로이 부사장은 "아까 본 남자는 구글 직원"이라며 "점심을 먹다 갑자기 벌어진 토론이었다"고 말했다. '릭렉스 페이먼트'와 구글 유럽 본사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거리. 그 짧은 구간에 약 5000명의 IT 전문 인력이 밀집해 있는 곳이 더블린이다.

거품 없는 성장동력 만들기

3층에 위치한 '릭렉스 페이먼트' 사무실에 올라서자 강 건너편에 국제금융서비스센터(IFSC)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IFSC는 구제금융을 몰고 온 금융산업의 메카였던 곳이다. 그곳에는 6년째 공사가 중단된 8층 높이의 콘크리트 건물이 몰락한 거품 경제의 상처처럼 남아 있다.

아일랜드가 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간 지난 2010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홈리스’한 명이 컵을 든 채 구걸하고 있는 모습(왼쪽 사진)과 구제금융을 졸업한 요즘 더블린의 한 회사 건물이 밤에도 불을 밝게 켜고 있는 모습(오른쪽 사진).

강 건너 더블린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대운하 주변의 '실리콘 독(dock)'. 구글을 비롯해 페이팔, 이베이 등 글로벌 IT 기업의 유럽 본부가 밀집해 있었다. 이 주변에선 낡은 벽돌 건물이 있던 자리에 새 빌딩이 쑥쑥 올라가고 있었다. IT 기업들이 더블린으로 몰리면서 사무 공간이 부족한 탓이다. '릭렉스 페이먼트'의 개리 콘로이 부사장은 "지도를 펼치면 아일랜드는 미국과 유럽 대륙의 가운데에 있다"며 "두 곳 모두에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경제 체질 전환 작업에 착수했다. 그동안 주력은 금융·부동산 등 '거품'이 많아 쉽게 뜨고 가라앉는 업종이었다. 1990년대 말 국제금융서비스센터를 짓고 금융기관을 대거 유치했는데, 이들이 가지고 온 돈으로 아일랜드 정부는 부동산 산업을 일으켰다. 당장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부동산값 상승으로 국민의 자산 가치도 올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투자은행들이 돈을 빼가자, 부동산값은 반 토막이 났고, 나라 경제도 엉망이 됐다.

지금은 농·식음료 산업과 관광, 제조업 등 '땀 흘리는' 산업으로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미국 제조업체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가 아일랜드 2대 도시 코크에 항공 관련 R&D(연구개발) 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7월 아일랜드 제조업 성장률은 전년 대비 18.5% 성장을 기록했다. 또 지난 금융 위기 이전만 해도 대부분의 젊은이가 외면하던 농업학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사양산업 취급을 받던 농축산업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 위기로 경제·사회의 거품이 꺼지자, 농축산업이 부활했다"고 분석했다. 아일랜드 개발청(IDA) 마틴 샤나한 CEO는 "다양한 일자리가 늘면서 경제위기 때 해외로 떠났던 젊은 인재들도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거품'을 만들지 않기 위해 경제성장 속도도 조절 중이다. 최근 기업이 몰리면서 더블린 부동산 시장은 다시 들썩이고 있다. 그러자 아일랜드 정부는 올해 초 임대용 부동산 구매 땐 대출을 70%로 제한하는 등 부동산 규제책을 빼들었다. 엔다 케니 총리는 "우리의 목표는 3~3.5% 경제성장"이라며 "다시 부풀었다 터지는(boom and bust)는 경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 리더십이 가른 아일랜드와 그리스의 운명

2010년만 해도 아일랜드와 그리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였다. 과도한 재정적자·부동산 가격 급락 등으로 경제 기반이 무너져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구제금융을 수용하며 경제주권을 내줬다. 하지만 5년 뒤 두 나라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아일랜드가 2013년 말 유럽 금융위기국 중 처음으로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국제 금융 시장에 복귀한 반면, 그리스는 여전히 국가 부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것은 정치 리더십이다. 2011년 3월 조기 총선에 승리하고 집권한 아일랜드의 케니 총리는 긴축 재정과 금융개혁 등 채권단의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하며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적극 설득했고, 이는 3년 만의 구제금융 졸업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리스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2010년 5월 채권단의 1차 금융구제안을 수용한 이후 5년간 임시정부를 포함해 여섯 차례나 정권이 뒤바뀌었다. 더욱이 케니 총리는 독일과 긴밀한 협상을 통해 구제금융을 신속하게 얻어내는 등 국제사회에서도 '실용 외교'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