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년 역사의 여성 사학(私學)에 남성이 웬 말이냐!”
22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청파로 숙명여대 정문 앞에 모인 여성 100여명이 뜨거운 가을 햇볕 아래에서 구호를 외쳤다. 머리가 허옇게 센 초로(初老)부터 앳된 20대가 섞인 숙명여대 총동문회 회원과 재학생들이었다. ‘남녀공학 결사반대’라 적힌 작은 피켓을 들고 소리친 이들은 곧 행정관 6층 총장실 앞 복도에 앉아 황선혜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집회에 들어갔다.
이날 이들이 총장실 복도 점거 집회에 들어간 건 숙명여대가 최근 ‘남성의 일반 대학원 입학’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다.
숙명여대는 20년 전부터 직업인 등의 평생 교육을 담당하는 특수 대학원의 남성 입학을 허용해왔지만, 학술·연구 등을 목표로 한 일반 대학원은 남성에게 문을 닫아놓았다. 서울에 있는 여자 대학 중 일반 대학원의 남성 입학을 금지하고 있는 학교는 숙명여대와 이화여대뿐이다.
하지만 숙대는 학령(學齡) 인구와 대학원 입학생이 점점 줄고 연구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등의 이유로 최근 일반 대학원의 남학생 입학 허용을 잠정 결정했다.
학교 측 관계자는 “일반 대학원 남학생 입학 허용 문제는 지난 5개월 동안 총학생회와 교수·교직원 등에게 폭넓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고, 최근 최고 의결 기구인 교무위원회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재단이사회의 최종 의결을 거쳐 오는 10월 시작되는 내년도 대학원 신입생 모집부터 남학생의 지원을 허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숙명여대 총동문회와 일부 재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순옥 총동문회장은 “최초의 민족 여성 사학에서 공부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동문 입장에서 일반 대학원 남학생 입학 허용은 날벼락 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이들은 학교 측의 의견 수렴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학교가 일반 대학원의 남학생 허용 방침을 처음 총동문회에 알린 건 지난 3일이라고 한다. 정 회장은 “당시 총동문회 임원회의 자리는 동문 의견 수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교 측이 ‘우린 이렇게 결정했으니 그렇게 알라’고 통보하는 자리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학교 측은 “일부의 반대 목소리가 있다 해도 일반 대학원 남학생 입학은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학교는 정책 취지와 방식 등을 학생들에게 전하기 위해 22일 별도의 설명회를 열었지만, 일부 학생이 반발해 파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