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미친 연산군과 광대 패의 대결이 황홀했던 ‘왕의 남자’는 1,23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 이후 10년간, 이준익은 과오와 실패를 거듭했다. ‘어제로부터 도망쳐서 오늘에 있고, 오늘로부터 도망쳐 내일에 이른다’는 도망자의 마인드로 그동안 그가 만든 영화가 무려 열 편이다.
‘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준익이 도달하고자 했던 이상과 판타지의 크기에 비하면, 영화에서 드러난 실제 스토리텔링은 종종 허장성세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익은 지속적으로 ‘우겼다’.
그리고 흥행도 비평도 시원찮던 차에, 2011년 ‘평양성’을 개봉할 땐 ‘이번에도 성공 못 하면 은퇴하겠다’는 폭탄 발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더 큰 사고를 쳐야 앞에 친 사고를 메울 수 있다는 이준익 스타일의 절박한 배포는 거기서 끝났다.
통렬한 자기반성의 시간이 지나고, 2013년 영화 ‘소원’으로 절치부심한 후 이준익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사방에 불을 지르고 다니던 점화의 시대에서, 불을 끄러 다니는 소화의 시대를 맞았다.
10년 전 ‘왕의 남자’의 전설이 되돌아왔다. 왕과 아들이 회오리처럼 맞붙은 ‘사도’는 도망자 이준익이 정면으로 역사와 삶을 응시한 영화다. 스스로를 조롱하고 부정하며 갈지 자로 걷던 한 영화 한량이, 좌정하고 붓을 들어 진정한 영화예술가로서 스크린에 한 획을 긋는다.
-‘사도’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뤘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입니까?
“...(한숨) 영조가 이런 대사를 했습니다. “37년 보좌에 있었으나 내가 왕이 무엇인지 신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것과 같습니다. 가족이 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황산벌’ ‘왕의 남자’ ‘ 라디오 스타’ 등 초기작에는 다 가족이 없습니다. ‘황산벌’의 계백은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전쟁터로 가고, ‘왕의 남자’의 광대패는 유사 가족일 뿐이며, ‘라디오스타’에서 매니저 안성기는 18년간 한물간 로커 박중훈을 보살피느라 아내와 자식을 버립니다. 가족으로부터의 도망은 이준익 감독의 트라우마가 아닙니까?
“...날카롭군요.”
-어쨌거나 성폭력 피해 아동을 다룬 영화 ‘소원’부터 달라졌더군요. ‘소원’이나 ‘사도’ 다 가족을 다뤄도, 여전히 비극의 압력이 높아서 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화는 아닙니다만.
“인생은 작용과 반작용의 반복입니다. 푸코의 진자와 같지요. 반작용의 끝에 가면 두려움이라는 놈과 만납니다. 지금 저는 다시 순응의 시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었고 철도 들고 있습니다.”
-자신을 일컬어 불 지르고 도망 다니는 사람이라 했지요?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은 불을 끄러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에 대한 불만 때문에 불을 지르고 다녔는데,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에 불을 끄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변하셨군요.
“변했습니다.”
-계기가 있습니까?
“세상이 무서운 걸 안 거지요. 머리가 점점 빠지니까 중력의 힘을 감당 못 하고 철이 들더군요.”
-육체적인 노화입니까? 정신적인 노화입니까?
“같이 가는 거겠지요. 앎과 삶이 분리되면서, 그 방향의 이격이 주는 불안이 생겼습니다. 앎이 삶을 앞서 가서는 안 되겠지요.”
-역사적인 사실이긴 하지만 사도도 아버지로부터 도망가려다 뒤주 안에 갇힌 것 아닌가요?
“사도는 아버지로부터 도망가려던 비겁한 인간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만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인간이지요. 아버지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났을 뿐.”
-왜 그 아버지와 아들은 만나지 못했을까요?
“출생 신분이 달라서예요. 아버지 영조는 평생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서자 출신이지만, 사도는 태어날 때부터 왕을 아버지로 둔 적자예요. 그래서 사도는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려는 동력이 있는데, 영조는 끝없이 판단하지요.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애비가 산다.” 부자의 애정의 동기가 너무 달랐어요.”
-부자지간임에도 불구하고 피의 인력보다 권력의 척력이 강하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대왕대비가 죽고 나서 영조와 사도가 같이 산소에서 사배하면서 그럽니다. ‘그냥 가만있으면 너 왕 되는 거 아니냐. 괜히 니가 곤조부려 대왕대비 죽게 했다’고. 이때 사도가 “네. 제 잘못입니다”하고 딱 일어나서 튕겨져나간 거지요. “이 새끼… 내 니 오기를 모를 줄 아느냐?” 하면서 영조도 날이 서는 거고요.”
-그러고 나서 사도는 영조의 표현대로 존재 자체가 역모가 되는 거지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그 아들의 반항도 실로 엄청납니다.
“전부 역사적 사실이에요. 사도가 후원에 가서 아예 토굴을 파고, 관 짜서 들어가 있거나, 기생, 비구니, 박수 무당 데려다 놓고 문란하게 놀고… 그게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닿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튕겨져나온 울분의 반작용이죠.”
-알렉산더도 정복자이면서 도망자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여, 왕이 됐는데, 알렉산더는 그 죄책감에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 도망가지 않습니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또 다른 변형이겠죠. 서양 신화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는 수많은 신화적 반복이 이루어집니다. 철학자 들뢰즈의 이론처럼 반복에도 다 차이가 있는 것이겠지요.”
-뒤주 안과 뒤주 밖의 세계처럼 권력과 서열이 개입할 때 아버지와 아들은 사실 만날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한쪽이 튕겨 나갈 수 밖에요. 당신은 늘 그 이탈, 도망자의 끝에 관계의 유토피아를 설정해놓는 것 같습니다.
‘왕의 남자’의 엔딩에서 장생과 공길이 한 줄 위에서 만나듯, 영조와 사도가 뒤주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나레이션 장면은 극한의 판타지더군요.
“관계의 이상향은 정반합으로 귀결됩니다. 그게 변증법이에요. 사도의 반 없이 정조의 합은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조라는 합에 이르기 위해 참 많은 사람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어요. 대왕대비(김해숙), 혜경궁(문근영) 등 부자를 둘러싼 주변인들도 역동성이 있었습니다.
“저 아래에서 어디로 터질지 모르는 그 부글거리는 마그마가 인간의 심리예요. 간신히 평형을 이루던 심리에서 어떤 부분이 쏠렸을 때 그 감정이 화산으로 분출되는 거지요.”
-대중 심리도 비슷합니다. 영화가 대중들의 어떤 무의식의 감정을 건드려서, 천만이라는 화산 폭발을 일으키는 거지요. ‘왕의 남자’가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요.
당시 이준익은 감정이라는 화학에너지를 일종의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킨 파워맨이었어요. 이준익이 성공 신화처럼 회자됐고 ‘인생이 한방인가? 구력인가?’라는 질문이 화두가 됐습니다.
“구력도 한방도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를 지속적으로 반복행위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어떤 지점에서 ‘저스트 매칭’이 되는 거죠. 수많은 ‘미스 매칭’의 운동성이 모여… 엇박자가 반복되다가 정박으로 한번 맞을 때가 있는 거예요.”
-‘암살’과 ‘베테랑’은 보셨나요?
“봤습니다. 아주 멋있었습니다.”
-최동훈과 류승완 감독은 그 ‘저스트 매칭’의 명수들이죠.
“부럽습니다. 부러워요. 사정없이 달려가는 그들의 에너지가 너무 부럽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드리블해가는 호날두와 메시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 화려한 개인기와 드리블! 나는 패스를 하지 않으면 미드필드를 건너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솔리스트 단독드리블로 미드필더를 건너가는 스프린터입니다.”
-최동훈의 ‘암살’과 류승완의 ‘베테랑’은 삶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었습니다. 이준익의 ‘사도’에 내재한 정치성은 무엇입니까?
“제 영화는 탈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입니다.”
-정말 변하셨군요!
“남자가 아 인생에서 두 번의 멍청한 순간에 빠지는데 한 번은 사랑에 빠졌을 때, 또 한 번은 정치에 빠졌을 때입니다. 그 멍청함에 대한 반성으로 저는 탈정치를 선택했습니다(웃음).”
-그렇다면 여자 이야기를 해보지요. ‘님은 먼 곳에’를 만들 때까지 여자를 잘 모른다고 했지요? 여자 대사가 많으면 삭제한다고. 그 부분에서는 류승완 감독과 비슷합니다. 어쨌든 이 영화를 봐도 ‘여성 심리’의 디테일에 대해선 더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사도’의 여배우 중에서도 여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없어요. 엄마로 존재하고, 딸로 존재하고, 며느리로 존재하고, 할머니로 존재하고.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가족공동체 안에서의 역할로 존재 가치가 있을 뿐이지요.”
-의식적으로 사랑과 여자를 멀리하고 있습니까?
“의식과 무의식의 접경지대에 삶의 비밀이 있는 거지요.”
-왜 영화를 만드십니까?
“영조의 입을 빌려 얘기하리다. “37년간 왕을 했는데도 왕이 무엇인지 신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왜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모르는 게 맞아요. 안다는 하는 순간 모순이 만들어지지요.”
-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을 텐데요?
“그 순간 오만이 생기더군요. ‘왕의 남자’가 통했을 때. 이기려는 마음… 호승심이 통했을 때, 세상이 만만치 않아서 그때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매를 맞아본 사람은 알지요. 그게 얼마나 아픈지…”
-언제 그렇게 아프던가요?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상업적 실패도 아픈 일이지만, 그보다 영화를 찍을 때 나 스스로 구축해온 논리를 오기처럼 밀고 나가다, 영화가 세상에 나와 수많은 결함을 지적받았을 때지요. 그런데 그걸 정당화시키려는 수많은 변명을 늘어놓는 그런 오기를 또 부려야 할 때.”
-왜 당시에 틀렸다고 인정하지 못했습니까?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요. 하지만 감독이라는 직능상 그러면 나만 창피당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배우와 투자자와 스태프와 나를 믿고 따랐던 동료들에게 수치를 안기는 일이었어요.
한 번 호랑이 등에 탔기 때문에 떨어져서 잡혀먹힐 줄 알면서도 오기로 계속 달리는 거지요. 영조가 사도에게 그러지 않습니까? “내 니 오기를 모를 줄 아느냐?(웃음)”
-그 오기로 은퇴 선언까지 했지요?
“오기라기보다 호기였어요. 이번만큼은 자신 있다는 마음에서 나온 일종의 역설의 수사법이었어요. 그런데 이준익이 이번에도 흥행 못 하면 은퇴한다는 말이 9시 뉴스까지 나왔지요.”
-영화계의 거물이었으니까요.
“한 번도 거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미물입니다. 불균질한 미물이에요(웃음). 어쨌든 그 망언은 나에게 큰 반성을 요구하는 신호였습니다.”
-복귀작인 ‘소원’은 이준익의 영화 소재로는 너무 의외였습니다. 성폭력 피해 아동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치유를 받았습니까?
“일상이 깨졌을 때,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희망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보다 더 큰 희망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상을 소중한 가치로 보살피지 못했던 제 과거의 오기, 그 염치 없던 순간들을 통렬하게 반성했습니다.”
-그렇게 과거를 엎고 도망 다니는 영화를 만들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뒤주’에서 직면을 한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결자해지한 거죠. 저 자신의 결핍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그런 의지만이 앎과 삶이 일치할 수 있게 합니다.”
-여전히 이상주의자시죠?
“아닙니다. 이제 깨달았습니다. 나는 허상 주의자였습니다.”
-정말 큰 깨달음에 이르셨군요. 영화는 결국 ‘내가 어떤 인간인가?’ 깨닫게 하는 도구인가요?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기자도 기사를 통해 자신을 깨닫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영화만큼 깨달음에 큰 비용을 지불하진 않습니다(웃음). 어쨌든 10년 전 ‘왕의 남자’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한국 대표 작품으로 출품됐을 때, 세상의 모든 상을 경멸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도 2015년 한국 대표작으로 아카데미에 갑니다. 지금은 그 상을 받고 싶습니까?
“세상의 모든 상을 경멸한다는 말도 허상이고 오기였습니다(웃음).”
-받고 싶으십니까?
“..........(침묵) 기뻐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사도’에 나오는 대사지요. 사도 세자가 어린 아들 정조에게 “넌 공부가 왜 좋으니?” 물으니까 답하죠. “할아버지가 기뻐하실 것 같아서요. 저도 그런 제가 싫습니다.”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아카데미란 그런 거니까요(웃음).”
-감독이나 영화인보다 여전히 ‘또라이’나 화가로 불리길 좋아합니까?
“이젠 싫습니다.”
-화가는 어떻습니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일그러진 자화상처럼 화가로서는 어떤 자화상을 그리고 싶습니까?
“자의식에 궁금증이 많을 때 그리는 게 자화상입니다. 자신에 관한 지식의 덩어리가 자의식이지요. 저는 자화상을 그리는 대신, 자의식을 객관화해서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영화 ‘사도’에서 어떤 대사에 애착을 느낍니까?
“ “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사도가 하늘로 화살을 쏘아올리며 아들 정조에게 한 말이지요. 사실, 이 대사는 작가가 좋아합니다.
저는 혜경궁이 허연 머리를 이고 사도 세자의 산소에 와서 “환갑이 지나서야 지아비 앞에 왔사옵니다.” 하는데, 그 대사를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기나긴 세월 지나 화해를 하는 장면이라…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잘 죽는 겁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거죠.”
-56살이면 아직 젊습니다.
“항상 죽음을 가정하고, 미리 설계하는 것처럼 지혜로워지는 방법도 없지요.”
-죽음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하십니까?
“영화를 찍다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살인을 저질러요. 극 중에서지만 목을 자르고, 목을 매고. 그런 장면을 찍을 때마다 저 인물이 세상을 왜 떠나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살인 면허를 지닌 자로서 감독은 어떤 정당성을 갖습니까?
“감독이라는 직업이 결국 타인의 죽음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영조가 참수를 시키든, 저놈의 입을 찢으라든, 사도를 뒤주에 가둬놓고 죽인 뒤에 마지막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목젖에 손을 갖다 댈 때, 저는 그 죽어가는 장면을 찍는 순간에 몰입합니다.
이 죽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저는 이미 ‘황산벌’에서 수천 명 수만 명을 죽이고, ‘왕의 남자’에서 무참히 죽이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가차 없이 죽이고. ‘평양성’에서도 허벌나게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각자의 죽음은 또 어떻게 개별성을 갖는가?
감독으로서 한 배우에게 죽음을 부여할 때, 자기 정당성 없이는 찍을 수가 없습니다. 오락에 목적을 두든, 의미에 목적을 두든, 영화 속에서 수천수만을 죽이면서, 그 안에서 저는 제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이 맞닿은 ‘죽음’에 ‘오케이 사인’을 내립니다.”
-죽음이 구체화되는 거군요. 영화는 삶보다는 죽음을 보는 창이네요. 죽음을 결정하는 감독으로서 당신은 현장에서 어떤 아버지입니까?
“영화 찍을 때마다 너무 무섭습니다. 내 결정으로 부끄러운 결과를 반복할 때 그건 공포입니다. 무서움을 줄이기 위해 저는 배우와 스태프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지 않게 교통정리를 합니다. 그들의 욕망의 신호체계를 끊임없이 파악해서 드나들게 하는 교통 경관이지요. 각자의 욕망이 서로 사이좋게 지나가도록.”
-송강호는 어떤 존재입니까?
“송강호는 내가 알 수 없는 배우입니다. 내가 송강호를 단어로 규정짓는 것 자체가 오류입니다. 영조를 연기하면서 그는 연기적 성취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아인은 어떤 존재입니까?
“유아인은 현재를 사는 인간입니다. 오늘 나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즉자적으로 표출해내는 배우입니다. 장르적 기술을 다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에서는 그 기술이 나오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매 순간 기술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는 그에게 제 할 일은 ‘오케이’를 외치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떤 성취를 이뤘습니까?
“가져도 봤고 누려도 봤고 이뤄도 봤습니다. 봉우리도 높고 골짜기도 깊었던 굴곡 많은 인생을 갈지자로 걸어왔습니다. 여전히 이루고 싶은 욕망은 남아서, 아직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도’에서는 무엇을 그렇게 이루고 싶었습니까?
“정조 소지섭이 부채춤을 추는 장면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역대 최고의 비극을 마무리하는 춤을!”
-사도를 죽이고 정조를 통해 화해를 이룬 소감이 어떻습니까?
“inner peace.(웃음) 내면의 평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