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중전화 박스가 트럭에 치여 산산조각이 났어요. 아, 그 안에 있던 건 마네킹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유체이탈해서 죽는 것 같아 슬프더라고요."

데뷔 20년 차 배우 배해선(41)은 요즘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고 했다. SBS 드라마 '용팔이'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여주인공 김태희를 인형놀이하듯 보살피는 황 간호사 역할을 맡아 충격적인 사망 장면이 나오는 8회까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진짜 무섭다' '소름 돋을 듯한 집착'이라는 평이 이어졌다. "카메라 신경 안 쓰고 연기에 몰입했어요. 김태희씨 뺨 때리는 장면은 정말 힘들더라고요. 너무 아름다운 얼굴이어서."

데뷔 20년 차 배우 배해선은 최근 TV 드라마‘용팔이’에서 자신이 맡은 황 간호사에 대해“여진(김태희)을 3년 동안 돌보면서 보호해 주려는 마음이 생겼고, 깨어나면 더 위험하다는 생각에 계속 재우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배해선은 국내 뮤지컬계에서 대표적인 주연급 여배우 중 한 사람이다. 연기·노래·춤에 두루 능한 그는 '에비타' '시카고' '댄싱 섀도우' 같은 대형 뮤지컬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다. '그을린 사랑' '멜로드라마' 등 연극 무대에도 꾸준히 서고 있다.

서울 창천동에서 자란 배해선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끼 많은 소녀'였다. 예쁘고 노래도 잘해 아역 배우 섭외도 들어왔지만 부친이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됐다. 막연히 '가수 겸 배우가 되고 싶다'고 꿈꾸던 그녀는 재수 시절 "꿈을 묻어두느니 한번 시도나 해 보자"는 친구의 권유에 서울예대에 원서를 넣었다가 덜컥 붙어 94학번으로 입학했다. 고 김효경 교수로부터 연기의 기초를 배운 뒤 연극 '택시 드리벌'과 뮤지컬 '의형제'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배해선은 10일 개막하는 4인극 '타바스코'(데보라 그레이스 위너 작, 박혜선 연출)를 통해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용팔이'의 황 간호사와는 달리 이번엔 코믹한 역할이다. "변두리 인생이라고나 할까요? 리즈라는 인물은 인생에서 별로 큰 낙이 없이 살아가던 여자예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주목을 받으면서 예전에 없었던 꿈과 열정을 품게 됩니다."

도그쇼에서 우승한 강아지 타바스코의 실종 사건을 둘러싸고 네 명의 남녀가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 이야기는 강아지를 찾는 일이 절박해지는 상황 자체가 웃음을 자아내고, 현대인의 고독한 자화상을 그려낸다. 배해선은 "뮤지컬 무대가 속에 있던 에너지를 쏟아내는 곳이라면, 연극 무대는 반대로 그 에너지를 속으로 주워 담는 곳"이라며 "한동안은 연극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극 '타바스코' 10~26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02)889-35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