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열 산업1부 차장

얼마 전 인도 출장길에 있었던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갈아탄 델리행(行) 비행기는 만원(滿員)이었다. 옆자리에는 일본인 사업가가 앉았다. 인도 델리 인근에서 스즈키 등 일본 자동차 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큰 고민이 '인도 직원들의 잦은 이직(離職)'이라고 했다. 특히 요즘처럼 "다시 인도가 뜬다"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들 때면 직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이직의 이유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한 달에 1000루피(약 1만7000원) 정도 더 받기만 해도 쉽게 이직한다는 것이다. 인도 직원들에게 "여기서 조금 더 경력을 쌓으면 나중에 승진해서 더 좋은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말이 쉽게 안 먹힌다고 했다. 인도인들에게는 '어음'보다는 '현찰'이 더 먹히는 것일까.

인도뿐 아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한국이나 일본의 기업 문화가 유독 충성심과 애사심을 중시한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가 지배했다. 직원들은 회사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회사의 성장이 개인의 행복이나 가족의 행복보다 우선시되기도 했다. 지금 중·장년층들은 "네가 다니는 회사가 잘돼야 너도 잘된다"는 부모님의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나 시부사와 에이치 같은 일본 경영의 거물(巨物)들은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이라고 가르쳤다. 아마도 전 세계에 '삼성맨' '현대맨' 'LG맨'이나 '도요타맨' '마쓰시타맨' 같이 직원들이 스스로 회사 이름을 갖다 붙여 자신을 부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유이(唯二)할 것이다.

대신 기업도 직원에게 희생만 요구한 게 아니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전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 차원에서 종신고용주의와 연공서열제를 도입했던 것은 이런 문화를 지속 가능하게 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이런 문화는 경제 현장에서 빼어난 기술과 인력을 축적하는 데 있어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IMF 외환 위기 이후 평생직장이란 말은 사라졌다. 상당수 직장에서는 '정년(停年)'이란 단어조차 존재 이유를 잃고 있다. 미국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슈미틀라인 학장은 "어떤 문화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어떤 문화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차이를 바탕으로 임금제도, 보수 체계, 목표 설정 방식 등이 제각각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사회 변화에 따라 임금 체계, 보수 체계, 목표 설정 방식을 바꿔야 할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이건 옳고 그름의 차원을 넘어선다. 문제는 이런 준비를 위해 개인과 조직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느냐는 것이다. 임단협 시즌을 맞아 아직도 틀에 박힌 임금 인상 요구와 파업 결의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답답함이 느껴진다. '삼성맨' '현대맨'이란 이름을 대신할 용어가 무엇일지 잘 모르겠기에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