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미국 생방송 기자 총격 살해범)
"조승희처럼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서울 양천구 교실에서 부탄가스 폭발시킨 학생)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진 총격·폭발 사건의 범인들이 공통적으로 조승희를 언급했다. 조승희는 2007년 4월 세계를 경악케 한 ‘미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이다. 그의 총기 난사로 당시 32명이 숨지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최악의 총기 난사로 꼽히는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범인들이 조승희를 언급한 것처럼 실제 이들 사건 사이에 유사점이 많다”고 말한다. 지난 26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생방송 진행 중이던 옛 동료 2명을 살해한 베스터 리 플래너건(41)은 조승희처럼 범행에 총기를 사용했다.
사회 부적응 상태에서 피해 망상을 갖고 분노를 표출했다는 점, 무차별 살해한 뒤 본인도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 범행 후 자살 시도 직전 미국 방송사에 사건 관련 노트·메모를 보냈다는 점까지 조승희 사건과 닮았다. 그는 미 ABC방송에 보낸 노트에서 “2007년 버지니아텍의 조승희 총기 난사 사건이 내게 영감을 줬다”고 했다.
1일 서울 양천구 한 중학교 교실에서 부탄가스를 폭발시키고 달아난 이모(15)군은 조승희처럼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범행 장소도 학교로 같았다. “사람이 싫었다”는 그는 올 6월 서울 서초구 A중학교에서 화장실에 방화를 하려다 제지당하고 불특정 다수를 흉기로 찌르려다 실패하자 전에 다니던 학교인 양천구 B중학교에서 부탄가스를 터뜨렸다. 전학 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이것이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에 붙잡힌 그에게서 휘발유가 든 페트병과 라이터, 폭죽이 발견됐다.
남궁기 연세대(정신과) 교수는 “최근 두 사건 범인이 모두 조승희를 언급했다는 건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면서 “먼저 행동 면에서 실제 범행 계획의 모티브가 됐다는 점, 심리 면에선 ‘나도 조승희만큼 했다’는 이른바 ‘왜곡된 자기 과시’가 투영돼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플래너건도 자신의 범행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렸고, 이군도 범행 장면을 직접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 2편을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 이군은 특히 범행 후 “조승희처럼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도 했다.
남궁 교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 범인인 조승희가 범죄자들 사이에 일종의 대표성을 갖게 됐다는 얘기”라며 “다만 플래너건이 조승희처럼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라면, 이군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했다. 실제 이군은 분노를 표출했지만, 흉기로 누군가를 살해하겠다는 계획만 세우거나 빈 교실에서 부탄가스를 터뜨리는 등 다른 사람을 해치진 않았다.
전문가들은 “두 사건 범인 모두 자기만의 환상에 빠진 채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불만을 남의 탓으로 투사했다”면서 “이런 이들을 최대한 빨리 가려내 내면의 공격성과 분노를 완충해 줄 사회적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