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 부부는 20년 전 결혼 후 미국으로 갔다. 김씨는 치과대학을 졸업했고 아내는 편의점을 하며 뒷바라지했다. 김씨는 2005년 뉴욕에 병원을 열었고 부부 관계가 악화돼 집을 나왔다. 아내는 그가 생활비를 주지 않자 저축한 돈으로 근근이 버티다 2011년 뉴욕주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 그러자 김씨 또한 '나도 가만 있지 않겠다'며 별도의 이혼 소송을 냈다. 그는 부부가 살던 뉴욕과 대륙 정반대 쪽에 있는 네바다주 법원에 소송을 냈다. 네바다주는 결혼과 이혼이 간편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이라도 6주 이상 체류하면 이혼 소송을 낼 수 있고 혼인 파탄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곳이다. 덕분에 김씨는 아내보다 먼저 이혼 승소 판결을 받은 후 병원을 팔고 한국에 왔고, 네바다주 판결을 근거로 한국 법원에 이혼 신고를 마쳤다.

남편의 얄미운 행동에 아내는 마음이 변했다. 아내 역시 네바다주 법원에 찾아가 '남편이 한 이혼은 무효'라는 소송을 내 이겼다. 이어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무효 소송을 냈다. 해외에서 이혼 무효 판결을 받은 경우 국내 법원에서 다시 확인을 받아야 효력을 갖게 된다.

우리 법원은 먼저 김씨가 이혼 소송을 낼 수 있을 만큼 네바다주에 살았는지를 따졌다. 김씨는 "네바다주에서 병원 개원을 준비했기에 어느 정도 거주했다"고 주장했지만 지인(知人)의 말 외에 객관적 증거는 없었다. 게다가 이혼 소장(訴狀)은 아내에게 제대로 송달되지도 않았다. 지난달 서울가정법원은 "이혼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여전히 부부인 만큼 김씨는 아내와 자녀에게 매달 250만원의 부양료도 지급하라고 했다.

이처럼 '쉬운 이혼'을 위해 네바다주를 선택했다가 국내에서 '이혼 무효'로 뒤집히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고 있다. 특히 외도 등으로 국내에서는 '유책 배우자'가 돼 이혼 소송에서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 네바다주에서 이혼 소송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내를 두고 다른 내연녀와 동거하던 이모씨는 2011년 네바다주에서 이혼 판결을 받아 국내에서 이혼 신고를 마쳤다. 그리고 내연녀와 새로 혼인 신고를 했다. 하지만 아내가 '네바다 이혼의 전모'를 파악하게 되면서 결국 이씨와 내연녀의 결혼까지 무효가 됐다. 이씨가 받아온 네바다주 이혼 판결문에는 '이씨와 아내가 공동으로 이혼을 신청했다'는 문구와 함께 '네바다주에서 6주 동안 거주한 아내가 공증인의 면전에서 이혼에 동의해 서명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지만, 아내는 1995년 이후 한 번도 외국에 나간 사실이 없었던 것이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 이씨의 이혼도 무효라고 판결했다. 아내도 모르게 이뤄진 이혼인 이상 당연한 결론이었다. 이 판결에 따라 내연녀와 혼인 신고한 것도 무효가 됐다. 기존 혼인 관계가 살아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이보다 훨씬 앞선 1993년 '네바다 이혼'에 대해 무효 판결을 한 바 있다. 박모씨가 결혼 후 취업을 위해 혼자 미국에 가 살다가 가족과 연락을 끊어버린 후 네바다주에서 이혼 소송을 했는데, 그 또한 배우자 몰래 서류를 조작해 이혼 판결을 얻은 사실이 들통났었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이혼 절차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네바다주에서 간단한 절차를 통해 이혼을 하는데 사후에 네바다주 이혼 판결의 형식적·실질적 하자를 다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허위 사실을 기재해 이혼 판결을 받았다면 (네바다주) 법원을 속인 것이어서 판결 자체도 무효이고, 이를 근거로 국내에서 이혼 신고를 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