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2시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면 이천IC 부근. 서울행 고속버스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110~120㎞/h의 속도로 1차로를 정속 주행하고 있었다. 한참을 내달리던 버스는 1차로로 달리던 싼타페 차량을 오른쪽(2차로)으로 추월해 1차로로 다시 진입했다. 1km 정도 더 달리다가 마찬가지로 1차로에서 주행 중이던 아반떼 차량을 2차로로 추월하고선 다시 1차로로 복귀했다. 우측 차로에서 좌측 차로로 앞지르기하는 '추월의 법칙'과 정반대로 주행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대형 버스도 화물차와 마찬가지로 지정차로제에 따라 1차로에 들어올 수 없다. 편도 4차로의 경우 3차로, 편도 3차로의 경우 2차로가 고속버스 등 대형 버스의 주행 차로다. 하지만 한국의 도로에서 이를 지키는 버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부고속도로는 평일(한남대교 남단~오산IC), 주말·공휴일(한남대교 남단~신탄진IC) 모두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1차로가 버스 전용 차로다. 이 구간을 제외한 경부고속도로 다른 구간과 기타 고속도로에서 버스는 1차로로 달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전용 차로를 벗어나도 한국의 버스는 1차로를 유유히 달린다.
2013년 한국도로공사가 경부·영동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주요 고속도로에서 지정차로 위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버스의 위반율은 17%로 전체 평균(3.7%)의 4배를 넘었다. 지정차로제 위반의 주범으로 꼽혀온 대형 화물차의 위반율(9.0%)보다도 높았다.
덩치가 큰 대형 버스도 화물차와 마찬가지로 제동 거리가 길고 돌발 상황에서 민첩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특히 수십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는 경미한 사고로도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지난 5월 31일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 회덕 분기점 인근에서 2차로로 주행하던 버스가 앞서가던 차량의 급정거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돌했다. 이 사고로 승용차 탑승자 1명이 크게 다치고 버스 승객 7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대형 버스는 무게 때문에 제동 거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고 차체가 높아 갑자기 핸들을 꺾으면 전복될 위험도 크다"고 했다.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제 적용 구간에선 전용 차로 적용 시간이 아닌 심야에도 1차로로 정속 주행하는 버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형 버스는 화물차 못지않게 다른 차량의 시야를 가로막고 진로를 방해해 사고 위험성이 크다. 이 때문에 많은 소형차 운전자가 오히려 1차로 이용을 꺼린다. 경부고속도로로 서울~평택 간을 출퇴근하는 김모(36)씨는 "늦은 시간에도 관광버스와 고속버스가 버젓이 1차로로 달린다"며 "특별한 경우 아니면 '1차로는 24시간 버스전용차로다'고 생각하고 진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속버스·관광버스 운전자 대부분은 "지정차로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만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고속버스 기사 인모(61)씨는 "우측 차로에서 대형 화물차와 섞여 달리면 정해진 도착 시각을 맞출 수 없다"며 "지정차로제를 준수해 달리면 같은 거리도 30분에서 1시간은 더 걸린다"고 했다. 인씨는 최근 1차로에서 정속 주행을 하다 경찰 단속에 걸려 범칙금을 냈지만, 앞으로도 1차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속버스 기사 이모(60)씨도 "코스와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를 맞추려고 1차로로 달리다가 빠른 승용차가 오면 2차로로 비켜주고 다시 1차로로 달린다"고 했다. 관광버스도 마찬가지다. 관광버스 기사 전모(65)씨는 "관광버스의 속도는 손님의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며 "야유회를 가는 경우면 모를까, 결혼식을 가는 경우엔 제시간에 못 맞추면 고객 항의를 받아야 하니 지정차로고 뭐고 가릴 처지가 아니다"고 했다.
고속도로에서 버스의 최고 제한 속도는 100㎞/h다. 2013년 8월 이후 생산된 11인승 이상 승합차는 3.5t 이상 화물차(최고 제한 속도 90㎞/h)와 마찬가지로 110㎞/h 이상 속도를 낼 수 없게 속도 제한 장치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한다. 하지만 본지 취재팀이 고속도로에서 목격한 상당수 버스는 이 속도를 훌쩍 넘겨 운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버스도 화물차와 마찬가지로 불법 개조가 성행하는데, 차량 성능은 그대로 둔 채 출력만 높이기 때문에 과속하다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고속도로에서 '안전'과 '신속',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도로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선 대형 차량의 이용 차로와 속도를 규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진형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전체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버스·화물차 등 대형 차량의 속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대형 차량이 정해진 차로와 속도로 주행하는 것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교통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