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2012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포럼에 패널로 참석했다. 한국 언론인들이 담당 분야별로 한·일 관계에 대한 주제 발표를 하고 일본 청중의 질문을 받는 방식이었다. 정치 담당이었던 필자에게는 한·일 외교 현안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60대로 보이는 방청객이 질문 형식을 빌려 문제 제기를 했다. "한·일 양국 간에는 보통 나라 사이의 보통 외교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양국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고 일본이 가해자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특수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나.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에 태어난 세대들도 계속 한국에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 건가."

그때 일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아베 일본 총리의 종전(終戰) 70주년 담화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전후(戰後) 세대 인구가 8할을 넘는다. 과거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 아들이나 손자들에게 계속 사죄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워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3년 전 그 노(老)신사 말의 메아리처럼 들렸다.

우리는 오만하고 무례한 정치인의 일탈인 양 아베 한 사람을 향해 분노하고 있지만 그의 언행(言行)은 일본인 대다수의 속내를 대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일본은 한국을 향해 "그만하면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느냐. 이제 채무 관계를 정리하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일(韓日)전은 시합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말한다. 1954년 해방 후 첫 한·일전이 일본에서 열렸을 때 선수단은 '이기지 못하면 전원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다'는 각서를 쓰고 경기에 임했다. 결과는 1승1무였다.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외교도 '축구 전쟁'과 다를 바 없었다. 양국 간 현안이 발생하면 우리 국민 전체가 들고일어났다. 일본 지도자가 독도나 과거사에 대해 자기 나라 입장을 내세우면 망언(妄言)이라고 불렀다. '미치광이의 헛소리'라는 표현은 전쟁 중에 적국을 향해서나 쓸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관계에 관한 한 언론도 팔을 안쪽으로 굽혔다. 그래야 애국적인 보도였다. 한국은 늘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일본은 뒷걸음질쳤다. 우리 외교력이 상대를 압도했던 것일까, 아니면 "실력이 부치면 정신력으로 맞선다"는 한·일 축구 전쟁의 노하우가 외교에도 먹힌 것일까.

일본의 전전(戰前) 세대는 과거사에 대해 부채 의식이 있었다. 한국을 한 수 아래로 접어 봤기 때문에 한국을 배려하는 척하는 여유도 있었다. 미국이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양보를 종용하기도 했다. 한·일 외교전의 운동장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정은 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1945년 종전 이후 세대는 사죄할 필요 없다"고 했을 때 그 면책(免責) 세대에는 1954년생 아베 자신도 포함된다. 일본은 세계 랭킹 2위 자리를 2010년 중국에 내줬다. 저 멀리 뒤처져 보이지도 않던 한국도 가시권 내에서 추격해 오고 있다. 일본은 동북아 강국으로서의 긍지와 체면을 잃었다. 중국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미국도 한·일 사이에서 약자 편을 거들 한가한 입장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일본에 대해 줄곧 강공(强攻)을 펼쳤다. 자신의 원칙대로 밀어붙여 연전연승해온 국내 정치의 필승 공식을 한·일 외교전에도 그대로 빌려 왔다. 정치 무대에선 국민이라는 심판이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 편을 들어주곤 했다. 하지만 국제 관계에는 심판이 없다. 각 나라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대편을 움직이기 위해 힘 대 힘으로 맞서는 실력대결이 통할 뿐이다.

아베 총리는 처음부터 한국에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아베에게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강제할 지렛대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우리 편을 들어줬을 법한 미국도 한국의 과거사 집착에 넌덜머리를 쳤다. 박근혜의 원칙은 외교 무대에선 전혀 힘을 못 썼다.

그동안의 한·일 외교는 한 수 접고 시작하는 게임이었다. 일본은 과거사 핸디캡을 안고 한국을 상대해 왔다. 그랬던 일본이 종전 70년이라는 이정표에 그 핸디캡을 묻어두고 가겠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반성 시한을 스스로 정하는 일본의 태도는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그런 논란과는 별개로 우리는 실력 대 실력으로 일본을 상대해야 하는 외교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외교전의 승부가 물리력만으로 갈리는 것은 아니다. 원초적인 힘은 달려도 그 파생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입지 선정과 동맹 관계의 활용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하드 파워의 부족을 대세 감각과 통찰력으로 메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대의명분을 내걸고 호통을 쳐본들 국제 무대에서 비웃음을 살 뿐이다. 우리는 과연 평평한 운동장에서 일본과 맞설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