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한국 현대바둑 70주년이기도 하다. 이 뜻깊은 해 여름 한국 바둑계는 전에 없이 뒤숭숭하다. 한국기원이 '바둑 채널'이란 이름의 바둑 방송을 내년 1월 출범시키기로 하고 지난 13일 발대식을 가지면서부터다. 바둑 동네에 축가(祝歌)가 울려 퍼져야 할 시점 같은데 뭔가 찜찜해하는 기류도 만만치 않다. 왜 그럴까. 상황을 복기(復棋)하면 몇 가지 이유가 짚인다.

우선 자금 문제다. 방송 사업비로 한국기원 '전 재산'인 약 4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추진 세력은 "자체 건물을 보유한 데다 장비나 시설비 비율도 크지 않아 내년 10월이면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 특성상 40억원은 턱없는 소액이어서 수십년간 쌓은 피땀의 결정체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소속원이 적지 않다.

한국기원이 내년 1월 전문 방송 ‘바둑 채널’ 개국을 발표하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사진은 성동구 홍익동에 위치한 한국기원 건물.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바둑계 총본산인 한국기원과, 바둑방송 시장을 거의 독점해 온 바둑TV 간에 1년 넘게 이어져 온 불화가 '갑(甲)의 직영(直營)' 형태로 마무리되는 모양새 때문이다. 바둑TV는 96년 세계 유일의 바둑 전문 채널로 출범 후 17년간 자본 잠식, 180억원 누적 적자 등 고전해오다 2년 전 처음 흑자로 전환한 회사다.

한국기원은 바둑TV에 대해 "보급·영업 등 측면에서 기원 시책을 안 따라줘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둑 발전을 위한 재투자를 외면하고 양자 간 협약도 어겨 고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다.

한국기원은 한 발 더 나가 정보 이용 계약, 기전 계약 등 바둑TV와의 기존 협약을 연말 만료 후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바둑TV가 공존 아닌 퇴출 대상임을 선언한 셈이다. 이에 대해 바둑TV는 "백기 투항하다시피 하며 모든 협약을 지켜왔는데 숨 쉴 공간조차 안 주고 몰아내려 한다"고 항변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바둑계로선 처음 겪는 민망한 장면이다.

적은 인력, 부족한 경험, 촉박한 일정에 대한 우려에 한국기원이 내세운 '묘수'는 총재 소유 종편 채널인 JTBC다. 바둑 방송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기원은 편성에 전념하고 마케팅과 송출 등 기술 부문은 JTBC에 의존하겠다는 복안이다.

"계열사까지 나서서 바둑 발전을 위해 봉사하려는 것"이란 게 기원 측의 설명이지만, 한편에선 바둑을 방송 영토 확장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다. 방송을 서둘러 강행하려다 얻은 의심이다. 일부 프로그램은 최근 개국한 JTBC 자회사 폭스스포츠 화면을 통해 소화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바둑에선 조화(調和)를 최고의 경지로 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두어가지 않고 과수(過手)나 무리수가 끼어들면 명국이 완성될 수 없다. 좀 더 여유로운 자세와 바둑계를 통할한다는 열린 마음으로 임할 때 방송 사업도 조화로운 명국이 가능하리란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