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취재팀이 지난 10일 오전 11시부터 10분간 영동고속도로 여주 분기점에서 여주 IC로 이어지는 편도 3차로 구간을 달리며 발견한 화물차는 총 12대. 그 가운데 9대가 지정차로를 위반한 채 달리고 있었다. 편도 3차로 기준으로 1차로는 추월차로, 2차로는 승용차와 중·소 승합차용 지정차로다. 모든 화물차는 3차로를 주행해야 하고, 추월할 때는 3차로의 바로 왼쪽 차로인 2차로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화물차 9대는 모두 1·2차로 위를 자기 차로인 양 달리고 있었다. 본래 주행차로인 3차로로 복귀한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지정차로제를 무시하는 일부 화물차의 '무법(無法) 주행'이 고속도로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주로 승용차가 주행하는 차로를 침범해 과속하는 화물차가 가장 흔했다. 적재중량 1.5t을 초과하는 화물차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9조에 따라 편도 2차로 이상 고속도로에서 최고속도가 80㎞/h로 제한된다.

그러나 본지 취재팀이 지난 10일 화물차 운행 비중이 높은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평택~제천고속도로 등을 돌아봤더니 1·2차로에서 제한속도 100㎞/h 또는 110㎞/h인 승용차와 함께 달리는 화물차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앞차에 바짝 붙어 추월하는 이른바 '칼치기'를 하는 화물차도 있었다. 이날 오후 12시 40분쯤 영동고속도로 남안성IC 부근 휴게소에서 나온 4.5t 화물차가 3차로에서 가속을 하더니 이내 1차로로 차로를 변경했다. 가까이에서 달리고 있던 승용차는 대형 차량의 차로 변경에 놀라 급히 감속했다.

1·2차로 질주하는 한국의 화물차 - 지난 10일 오후 평택~제천 고속도로 평택 방향 편도 3차로 도로에서 대형 트럭들이 2차로를 줄지어 달리고 있다. 지정차로제에 따르면 편도 3차로일 때 모든 화물차는 3차로로 달려야 한다.
맨 오른쪽 차로서 달리는 독일의 화물차 - 독일의 편도 4차로 아우토반. 모든 화물차가 지정차로제에 따라 4차로로 주행하고 있다.

규정 속도를 지키더라도, 지정차로제를 위반한 대형 화물차들로 인해 사고 위험이 커진다. 이날 오전 11시쯤 영동고속도로 1차로에서 1t 냉동탑차가 80~90㎞/h로 5분 이상 정속 주행을 했다. 바짝 따라붙은 승용차가 비켜달라는 신호로 상향등을 깜빡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승용차는 2차로로 차로를 바꿔 화물차를 앞지르고서 1차로에 다시 진입했다. 보기에도 아찔한 '곡예운전'이었다.

화물차의 지정차로제 위반이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도 있었다. 오전 12시 38분쯤 평택~제천고속도로 남안성 IC 부근에서 1차로로 달리던 4.5t 화물차가 앞서가는 차를 추월하려고 2차로로 끼어들었다가 1차로 재진입을 시도했다. 쌀포대를 가득 실은 화물차가 비교적 느린 속도로 2차로에 진입하자 2차로에 있던 승용차가 놀란 듯 속도를 줄였고, 그 뒤를 따르던 차들도 잇따라 속도를 낮췄다. 차간 거리가 좁았거나 다른 차량 운전자들의 반응이 늦었으면 연쇄 추돌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갓길을 추월차로로 이용하며 지정차로제를 무시하는 화물차도 적지 않았다. 이날 오후 12시 47분쯤 평택~제천고속도로 3차로를 달리던 4.5t 화물차는 오른편의 갓길을 통해 앞서가던 2.4t 화물차를 추월해 갔다. 차폭에 비해 갓길이 좁아 4.5t 화물차는 2.4t 화물차의 옆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켜나는 '묘기'를 부려 앞지르기를 했다.

국내 전체 자동차 중 화물차는 16.7%(2014년)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화물차로 인한 사고 비율은 전체의 22.6%에 이른다. 국토교통부 교통량 정보제공시스템(TMS)에 따르면 화물차 운행이 많은 평택~제천고속도로의 하루 평균 운행 차량 3만9028대 가운데 화물차(1만4258대) 비율은 36.6%에 달한다. 경부고속도로의 화물차 비율도 26.7%다. 화물차들이 승용차와 같은 차로를 이용하며 섞이면 그만큼 사고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화물차들이 지정차로제를 어기는 가장 큰 이유는 과속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영업용인 화물차들은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화물을 배달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에 과속하고, 그 과정에서 추월을 위해 지정차로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속 화물차에 대한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속도위반 카메라는 각 차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차로마다 규정된 속도에 따라 달리는지만 확인할 뿐 차종에 따른 제한속도를 따지지 않는다"며 "이를 악용해 일부 화물차가 승용차와 같은 속도를 내며 1·2차로를 넘나드는 것"이라고 했다.

대형 차량은 가속과 감속이 느리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화물차가 승용차와 뒤섞여 달리면 그만큼 사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황경승 교통안전공단 차장은 "2013년 8월 이후 만드는 승합차와 3.5t 이상 화물·특수차에는 시속 90㎞를 넘지 못하도록 속도 제한 장치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하지만, 불법 개조로 이를 제거하는 경우가 많아 유명무실한 상황"이라며 "경찰이 불법 개조부터 대대적으로 단속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