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개방적 리더십 vs 진보 판타지…계속 변주되는 웨스트윙
인간의 이기심 그대로 보여준 하우스 오브 카드

드라마 '어셈블리'가 여의도 정치권에서 잔잔한 호응을 끌어내면서 그동안 방영됐던 '웰 메이드' 해외 정치 드라마들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권력을 향한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잘 묘사하고 있는 '어셈블리'를 보면서 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은 공전의 히트를 쳤던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West Wing)'과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 노무현·문재인이 호평한 '웨스트 윙'…탈권위적인 소통 강조 두드러져

'웨스트 윙'은 2006년 종방됐지만 아직도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 학계 등은 웨스트 윙을 계속 호출해 우리 정치 현실을 진단하고 분석한다. 시즌 7까지 방영된 에피소드 중 상당히 많은 스토리가 우리 현실 정치와 겹쳐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도 종종 드라마 속 주인공과 비교된다.

웨스트 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급하면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탈(脫)권위적인 모습을 묘사한 언론 기사를 본 후 "요즘은 웨스트 윙을 보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역동적인 리더십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웨스트 윙을 언급한 적이 있다. 문 대표는 대선 투표 직전인 2012년 12월 15일 일명 '광화문 대첩'이라 불리는 연설에서 웨스트 윙을 언급하며 "'청와대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면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웨스트 윙을 보면 대통령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 가면서도 복도에서 비서들을 만나 농담도 나누고 비서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들어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깜짝 회의하는 모습이 나온다"며 "국정 현안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그때그때 비서들과 의논하고 소통하는 모습으로 지금 미국 민주주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을 듣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노무현-문재인'을 감동시킨 웨스트 윙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뉴햄프셔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 제프 바틀렛 대통령의 8년 집권기를 그렸다. 비서실장(리오 멕게리), 비서실 차장(조시 라이먼), 공보수석(토비 지글러)과 공보차장(샘 시본), 백악관 대변인(CJ 크렉) 등 '독수리 5남매'가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비서진이 있는 백악관 서관(西館)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진다.

웨스트 윙의 매력은 딱딱한 정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데 있다. 복잡한 국내 현안과 국제정세를 숨 가쁘게 얽어내면서도 소소한 인간사와 함께 버무려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웨스트 윙이 '민주당의 백악관'을 그린 탓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웨스트 윙이 아니라 레프트 윙(left wing)"이라고 부를 만큼 이 드라마를 싫어했다는 얘기도 있다. 권력에 대한 진보들의 판타지라는 지적도 있다. 권력을 다루지만 암투는 거의 나오지 않고, 모든 갈등이 논쟁을 통해 해결되고 논리적으로 맞는다면 정적(政敵)의 요구도 받아들이는 모습이 자주 그려지기 때문이다.

◆ 오바마가 극찬한 '하우스 오브 카드'…비정한 권력의 속살 그대로 보여줘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책과 가치를 다룬 웨스트 윙과는 결이 다른 정치 드라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권력의 꼭짓점을 향해 달려가는 욕망의 정치인들이 벌이는 정쟁과 스캔들을 다룬다. 웨스트 윙이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식적인 브리핑을 다룬 드라마라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치인들이 무대 뒤에서 배경을 설명하는 '백브리핑', 아니 보도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오프 더 레코드'를 주재료로 사용한 드라마다.

'현실 정치를 있는 그대로 다뤘다'는 평을 받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등 유력 정치인들이 열광적 팬임을 자처하고 있다. 대중과 평단의 호평은 물론 전 세계의 유력 정치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드라마 기저에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깔렸기 때문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인간의 이기심과 성악설에 기반을 둔 정치 드라마다. 권력욕으로 가득 찬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는 희생이 필요하네. 물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지", "고통을 가할 거라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을 가해야 해. 그래야 내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지" 같은 비정한 권력의 독백이 에피소드의 전반에 흐른다.

드라마는 대통령의 야망을 품은 주인공 국회의원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가 권력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행보를 그린다. 주인공은 정치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성추문, 뒷거래까지 무기로 사용한다. 자본과 정치는 로비스트를 고리로 연결되고 언론과 정치는 특종보도를 매개로 유착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란 위태로운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시즌 1과 2에서 프랭크는 장관 자리를 약속받고 대통령의 당선을 돕지만 결국 배신당한다. 하지만 그는 온갖 권모술수로 원내대표를 거쳐 부통령까지 오르며 자신의 입지를 되찾는다. 시즌 3에서는 대통령이 된 프랭크가 사방에서 공격을 받으며 위태롭게 국정을 이끄는 모습을 그린다. 시즌 3까지 방영됐다.

재미있는 점은 프랭크가 웨스트윙의 주인공 바틀렛과 같은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바틀렛과 프랭크와 함께 우리 현실 정치를 비교해 본다면 재미와 함께 고민해 볼거리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