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전선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둘러싸고 12일 큰 혼선이 벌어졌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난 4일 사고 당일 이미 북 소행으로 판단했다고 발언한 게 발단이었다. 한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 출석, 북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최초 판단한 시점에 대해 "4일 늦게"라고 했다. 그는 해당 부대가 속한 군단(軍團) 차원의 조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상부에 다 보고됐다"고 했다. 상부는 청와대 안보실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몇시간 뒤 한 장관 발언을 전면 부인했다. 한 장관 스스로도 착각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이 때문에 지뢰 도발 사건 이후 정부의 대응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 안보실이 안보 위기 때 이 나라 안보 사령탑으로서 제 역할을 했느냐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라면 당연히 북의 소행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증거가 없더라도 북의 소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어야 옳다. 안보실은 다음 날 통일부가 북한에 어떤 전통문을 보내고 대통령이 경원선 복원 기공식에서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지뢰 폭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안보실은 모든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토록 했다.

통일부는 다음 날인 5일 오전 11시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같은 시각 대통령은 경원선 복원 기공식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했다. 북 도발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병사의 다리를 날린 집단에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셈이다. 전통문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포함돼 있었다. 한쪽에선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선 관광을 재개하자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통일부는 북 소행이라고 발표한 10일까지도 매일 전통문 수령을 북에 요청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벌였다. 이러니 아무리 '혹독한 응징'을 말해봐야 북이 들은 척이나 하겠는가.

군은 이번에 2단계 조사 과정을 거쳤다. 군단 차원의 조사는 4~5일 이틀간 이뤄졌다. 이어 합참이 유엔사(司)와 합동으로 2차 조사를 벌인 뒤 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거쳐 10일 북의 도발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밟은 것은 조사 결과의 설득력을 높였다는 점에서 잘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현장 병사들이 침착하게 대응하고 부상 병사들을 일사불란하게 병원으로 이송한 것은 훈장을 줘도 아깝지 않다. 군이 11년 동안 틀지 못했던 확성기 방송을 과감하게 재개한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정작 국가 안보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해야 할 청와대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박 대통령의 행보도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5일 오후 북의 도발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들은 뒤에나, 8일 북의 소행이 확실하다는 보고를 듣고서도 NSC를 주재하지 않았다. 국방부가 북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10일에도 대통령은 북의 표준시 변경만 지적했다. 젊은 장병들이 발목을 잃은 지 열흘이 다 되는데도 외교안보수석만 보내고 직접 위문은커녕 위로 전화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는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느 곳에 있었는지가 확인되지 않아 뒷말이 많았다. 메르스 사태 때는 전염병으로 국민이 죽어가는데도 여수 창조경제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 뒤 정작 대책 회의는 열지 않았다. 그때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적 위기 앞에서 늑장 대응한다는 불만이 비등했다. 그런 홍역을 치르고서도 이번에 북 도발에 대해서까지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이 최소한 안보(安保)만큼은 확실하게 챙길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마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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