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석환의 인생 旅路와 대한민국

계획 없는 여행은 낭패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패기 있어 보이지만 엉성하다. 여정 내내 속은 타고 몸은 고단하다. 고통과 갈등뿐이요, 집 생각만 나게 된다. 인생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매석환이라는 인물이 살아온 여정이 그러했다.

매석환은 머리가 좋고 그림에 재주가 있는 소년이었다. 열여섯 살이던 1954년 매석환은 영화표를 위조해 팔다 소년원으로 갔다. 10대 시절 저지른 위조 문서 범죄가 두 건이다. 성인 신고식은 유괴사건으로 치렀다. 1960년 12월 23일 매석환은 유괴범이 됐다. 대상은 자유당 시절 경무대 경무관이던 곽영주의 아들이었다. 검거된 매석환은 “경무대 앞 바리케이드에 오줌을 누다가 곽영주한테 경찰봉으로 두드려 맞아 복수하려고” 아들을 유괴했다고 했다. 곽영주의 아들은 “라디오도 듣고, 과자도 먹고, 만화책도 보면서” 지내다가 무사 귀환했다. 징역 1년형을 받고 나온 매석환은 대학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1964년 11월 6개월 만에 탈영했다.

탈영 생활 중 “동경올림픽 구경을 하겠다”며 손을 댄 게 위조지폐였다. 셋방에서 위조 방법을 연구하는 태도가 하도 진지해서 주인집 내외는 매석환을 사위로 삼을 생각까지 했다. 연구 석 달 만인 1964년 10월 이 탈영병은 위폐를 달러로 바꾸러 갔다가 암달러상 신고로 체포됐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맨발로 탈출했다.

매석환은 한 공장을 기웃대다가 도둑으로 의심한 공장 사람에게 얻어맞았다. 하필이면 그 사람이 군인이었다. 매석환은 “군발이가 사람 때린다”며 경찰서에 찾아갔다. 당연히 체포됐다. 군인은 현상금을 받았다.

형을 살고 출소한 매석환이 저지른 짓이 영화 ‘극비수사’의 모델이 된 부산 유괴사건이었다. 이때도 유괴된 아이가 “왜 우리 아저씨를 붙잡냐”고 할 정도로 아이를 극진하게 보호했다. 1981년 이윤상 군 유괴사건이 터졌을 때, 매석환은 “유괴범죄는 어리석은 짓이니 자수하라”고 옥중편지를 쓰기도 했다. 매석환은 “풀려나면 사진관을 운영하며 살겠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언론에 공개된 얼빵한 매석환의 일생이다. 어리석기가 이를 데 없어, 영화에는 존재감 자체가 없다.

민완 형사가 도사와 함께 유괴범을 잡는 영화다. 유괴범은 존재감도 없다.

요약하자면 코미디요, 단기적인 치밀함과 장기적인 철저한 무계획으로 일관된 인생 여로다. 재주와 머리 하나 믿고 눈앞의 가치를 향해 충동적으로 덤벼들었다가 망한 케이스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바로 그렇다. 전체 로드맵과 예산, 목적지의 우선순위를 설계하지 않으면 망한다. 아무리 예산이 풍부하고 시간이 많아도 그렇다.

이 여행이라는 단어를 ‘국가 경영’으로 바꿔도 뜻이 통한다.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설계도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 나라를 휩쓰는 이 역병(疫病) 대처에, 장기적인 설계도가 없었다. 매일 오락가락했다. 때마침 덮친 가뭄을 해결할 그 어떤 수단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내려주는 비와 태풍만 기다렸다. 정치는 어떤가. 여당이고 야당이고 막말 당쟁(黨爭)이 한창이다. 죽여야 살겠다는 제로섬 당쟁이다.

뇌물 받고 어찌했다는 탐관오리 이야기는 이제 시시하다. 업자에게 받은 명품 시계들을 돌려주면서 “지문을 지워 달라”고 주문한 국회의원도 있다. 경제는 어떤가. 어제는 빚내서 집을 사라고 하더니 오늘은 대출을 조이고 회수하겠다고 한다. 역병에 기근에 당쟁에 탐관오리와 경제까지, 이쯤 되면 바보 천치 가이드에 끌려 다니는 싸구려 패키지여행과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