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에서 백제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건물지와 생산시설 유적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재)국강고고학연구소가 지난해 3월부터 발굴조사 중인 충남 서천 종천지구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부지에서 백제~조선시대에 걸친 각종 건물지, 생산유적 등의 유구(遺構)가 대단위로 확인됐다고 10일 밝혔다.
특히 이곳의 통일신라~고려시대 유구층에서는 현재 문헌상에 찾아 볼 수 없는 '운갑사 (雲岬寺)', '개복사(開福寺)' 명문이 찍힌 기와가 출토돼 역사에서 사라진 폐사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자료로 주목된다.
또 절터 외곽지대서는 백제 토기·기와 가마, 종 등을 만들던 주조유구, 통일신라~조선 시대에 이르는 기와·도기·자기·숯가마 등의 유구가 발견돼 백제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사회적 변화상을 살필 수있는 유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강고고학연구소의 유구에 대한 시대별 조사결과, 백제시대 건물지는 가로 3칸 세로 2칸의 상돈(磉墩) 건물지로 조성됐고 이후 이 건물지를 포함해 넓은 면적을 네모난 모양으로 파내고 여러 겹의 흙을 다져 항축(夯築)유구를 만들었으며 그 외곽을 둘러싼 띠 모양의 항축유구를 다시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지하굴식의 등요(오름가마)인 백제시대의 토기가마 2기가 확인됐고 서편에 위치한 2호 토기가마는 길이가 약 17.75m에 달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건물지 등 대부분의 시설이 백제시대 유구를 그대로 개축해 건물 축선과 배치가 백제시대와 일치한다.
통일신라 유구는 계단식 축대시설과 출입시설, 항축유구, 배수로, 초석, 적심시설과 함께 '회창오년 운갑사(會昌五年, 雲岬寺)' 명문기와와 석조 불상의 불두편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운갑사 건물로 짐작된다. 회창(會昌)은 당나라 무종(武宗)의 연호로 회창오년은 845년이다.
고려시대에는 이전 시기의 유구를 깎고 복토해 건물의 중심축선이 바뀐 것으로 확인됐고 고려후기 유구도 고려전기 유구를 전체적으로 복토한 뒤 새로운 배치와 축선으로 축조해 많은 변화가 발견된다.
사역 외곽에는 'ㄷ'형태로 담장을 조성하고 중앙에 건물을 세웠으며 사역 내부에서는 중정(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과 행랑채 건물, 측면 건물 등이 확인됐고 소조불상과 '개복사(開福寺)' 명문기와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조선시대 유구는 고려시대 시설을 그대로 활용했으며 보도시설과 기단석렬, 초석 건물지, 출입시설, 담장열 등이 확인됐다. 석조 불상편을 담장 재료로 사용했던 것으로 미뤄 조선시대에는 사찰이 아닌 다른 시설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과 국강연구소는 백제시대 건물지는 축조방법과 연화문 수막새 등의 출토유물 등으로 미뤄 관청(官廳), 객관(客館), 제의(祭儀), 사원(寺院) 등의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어 백제가 멸망하면서 초기건물의 기능이 상실됐다가 통일신라 하대에 백제시대 건물지의 대지와 축선을 활용한 운갑사를 창건한 뒤 고려시대에 개복사로 명칭을 변경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성격의 건물로 다시 변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11일 오후 2시 충남 서천군 종천면 신검리 발굴현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며 조사가 완료되며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유적에 대한 보존방안을 수립해 추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