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자원의존도가 높은 남미 국가 대부분은 경제 사정이 나빠졌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남미 경제 규모 1위인 브라질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올해도 4%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대하는 남미 국가가 있다. 볼리비아다. 지난달 국제 신평사 피치는 볼리비아의 재정정책과 경제정책이 적절하다고 평하고, 국가 신용등급을 ‘BB-’에서 ‘BB’로 한 단계 올렸다. 볼리비아 원자재 생산업체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자 수출계약을 장기로 체결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자원 개발 산업을 총괄하는 볼리비아 정부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과달루페 팔로메케 테 타보아다 주한볼리비아 다민족국가 대사

과달루페 팔로메케(Palomeque) 데 타보아다 주한볼리비아대사를 서울 중구 대사관에서 만났다. 그는 “볼리비아는 최근 5년 동안 연 4.5~5.5%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올해도 경제 전망이 밝다고 설명했다.

“2006년 40억달러(약 4조6700억원)였던 볼리비아의 수출 규모는 2014년 120억달러로 늘었습니다. 현재 볼리비아의 국내총생산(GDP)의 60%에 해당하는 140억달러가 각종 투자사업에 쓰입니다. 천연가스를 국가의 전략자원으로 지정해 관련 사업체를 국유화하고,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해 빈곤층을 줄인 정책이 주효한 것이죠.”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정책의 목표도 ‘평등’이다. 볼리비아는 지난 2009년 개헌을 통해 ‘공화국(Republic)’에서 ‘다민족국가(plurinational state)’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볼리비아 내 문화, 언어적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인구의 80%가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공용어로 지정했다. 케추아어, 아이마라어, 과라니어 등 37개 언어가 공용어다.

양성평등도 볼리비아 정부의 중점 과제다. 내각의 50%는 의무적으로 여성에게 할당하고, 정당들은 비례대표제 명단에 여성 후보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2013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볼리비아의 양성평등 순위는 27번째로 높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해 3선에 성공했다. 경제 분야에서 현 정부의 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경제 영역의 중점 과제는 빈곤 퇴치다. 볼리비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한데, 자원개발로 얻은 수입 대부분을 정부 예산으로 쓴다. 사회복지제도는 청소년, 여성, 노인 등 사회취약층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저소득층 가계에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고, 모든 산모에게 출산 후 최장 1년까지 식료품을 지급한다. 60세 이상 노년층에게는 매달 현금으로 200볼리비아노(약 3만5000원·미화 약 29달러)를 지급한다. 볼리비아의 최저임금이 월 360달러(약 42만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아시아나 태평양, 아프리카 등에선 역내 경제 협력이 강해지는 상황이다. 볼리비아는 이웃 남미 국가들과 어떻게 협력하나. 최근에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 회원국 가입 승인도 받았는데.

“볼리비아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이웃나라들과 수출 협정을 체결했다. 남미 대륙의 중앙인 볼리비아의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에너지 산업의 허브(중심지)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17일 우리(볼리비아) 대통령이 브라질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남미공동시장 가입 협정에 서명했다. 아직 정식 회원국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절차가 남았다. 회원국 중 하나인 파라과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파라과이 쪽에서 제기한 불만과 요구 사항을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볼리비아는 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이 되기 전에도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슷한 관세 협정을 맺은 상태였다. 교역품의 95%는 관세를 면제받거나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가입 자체만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남미공동시장의 다음 과제는 유럽연합(EU)처럼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적용하는 관세 규정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볼리비아는 그 과정에 참여하고, 지역 통합에 기여할 계획이다.”

―볼리비아와 한국의 경제적인 관계는 어떤가. 한국 기업들과 어떤 분야에서 협력하고 싶은가.

“올해는 볼리비아와 한국이 수교한지 50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볼리비아의 8위 수출시장이고, 볼리비아와 상호보완적인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시장 규모나 높은 소득 수준이 매력적이다. 볼리비아는 은, 아연, 납, 주석, 리튬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남미 자원개발 사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창업 초기 단계인 소규모 볼리비아 기업들은 배우려는 열망이 크다. 볼리비아에선 철도, 공항 건설 같은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중이고, 이를 위해 (한국 기업으로부터) 기술이나 자본조달 노하우 등을 얻고 싶다. 볼리비아는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나 의료 분야의 디지털 기술 등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볼리비아의 가장 중요한 외교 현안은 무엇인가.

"해상 영토를 되찾는 문제다. 1825년 볼리비아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엔 400킬로미터(km)의 해안선이 있었지만, 1879년 태평양전쟁 당시 칠레에게 바다와 접한 영토 일부를 빼앗겼다. 은과 초석(硝石) 등 천연자원을 노린 영국계 다국적기업의 입김이 작용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 문제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영토 문제를 국제적인 안건으로 만드는 이유는 뭔가. 한국도 일본과 독도 문제로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의 개입을 요청하는데 신중한 입장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2013년 4월 ICJ에 제소했다. 태평양 연안 영토의 소유권이 어느 나라에게 있는지, 국제 사법기구가 판단해달라는 뜻이다. 칠레 정부는 국제사법기구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정부와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태평양 연안을 접한 볼리비아의 영토가 표기된 옛 지도 등 증거자료도 충분하다.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칠레 정부는 볼리비아가 태평양으로 접근할 권한에 대해 볼리비아 정부와 협상할 의무가 있다. 둘째로 칠레 정부는 이 같은 의무를 위반했다. 마지막으로 칠레 정부는 신의를 지켜 신속하고 공식적으로, 합리적인 시한 안에 볼리비아 정부에게 태평양 영토에 대한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해안 영토를 잃은 볼리비아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등에게 둘러싸인 내륙국가가 됐다. 직접적인 해상무역이 불가능해진 탓에 볼리비아의 수출 여건도 나빠졌다. 볼리비아 정부가 영토 탈환에 총력을 다하는 배경에는 해상무역로 확보 문제가 있다.

―볼리비아 정부는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외 정책을 쓰고 있나.

“국제기구와 단체에 스페인어와 영어로 홍보물을 보내고, 해외 저명인사들에게 볼리비아 정부의 영토 반환 요구가 정당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호세 사파테로 전 스페인 총리도 볼리비아 정부의 협상 요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주변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볼리비아) 정부는 영토 분쟁을 해결하지 않는 칠레가 남미 국가들의 통합을 저해한다고 본다. 우루과이, 페루, 멕시코,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의 전현직 대통령들도 우리 정부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