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4년마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를 어떻게 획정(劃定)할 것인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선거구마다 인구가 늘거나 줄기 마련이고 여기에 맞춰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구를 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선거구를 조정할 때마다 정략적인 획정(게리맨더링) 담합이 이뤄지기 일쑤였다. 여야 실력자들의 농촌 지역구는 인구가 줄어도 건재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인구수가 도시 선거구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농촌 선거구가 등장했다. 현재 경북 영천시 선거구의 인구수는 서울 강남구 갑(甲)의 3분의 1이다. 영천 유권자 한 사람의 표가 강남 갑 유권자 세 사람의 표와 가치가 같은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인 '모든 유권자의 표는 같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등가성(等價性) 원칙에 어긋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이런 위헌적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구 간 인구수 편차를 최소한 2대1로 맞추라고 결정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만큼은 선거구 획정을 현역 정치인 손에 맡겨선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에 따라 정치 개혁 차원에서 독립적인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지난달 15일 출범한 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13일까지 의원 정수, 지역구 비례대표 의석 수, 자치 구·시·군의 일부 분할 허용 여부와 같은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회는 묵묵부답이다. 결국 획정위 김대년 위원장이 "여야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야가 선거제도 개혁의 첫걸음이랄 수 있는 선거구 획정 기준도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와 야, 당 지도부와 의원들의 생각이 제각각인 탓이다. 여당 지도부는 현행 300명 의원 규모 내에서 지역구 의원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 지도부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쪽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여야가 각각 영호남에서 차지할 수 있는 의석수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체 의원 수 증원,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 조정 문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도시와 농촌 의원, 지역구와 비례 의원들의 밥그릇이 걸린 일이다. 특히 독립 선거구 유지가 위험해진 농촌 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자기 지역구만 살릴 수 있다면 의원 정수를 늘리든 말든, 멀쩡한 독립 시·군·구를 가르든 붙이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여야는 이처럼 영호남 분할 구도와 기득권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선거제도 개혁을 시작부터 난관에 빠뜨리고 있다. 눈앞의 의석 몇 개에 정신이 팔려 국민들과의 약속을 걷어차 버리려는 것이다. 유권자를 우습게 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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