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우산을 도난당했으니 수사해주세요."

지난달 말 서울의 한 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에 한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5만원짜리 우산을 지하철에서 도난당했다며 빨리 찾아달라고 경찰을 재촉했다. 경찰은 "혹시 분실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이 남성은 "누군가 훔쳐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지하철 CCTV를 돌려봤지만 '우산 도둑'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지난 2월 피해 금액 100만원 이하의 도난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로 출범한 생활범죄수사팀이 일부 시민의 무개념 신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초 생활범죄수사팀은 수사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생활 속 작은 범죄를 해결해 국민의 치안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전국 87개 경찰서에 설치된 이 팀은 올해 6월까지 도난 사건 4630건을 해결했다. 그동안 경찰에 신고하기 망설여졌던 경미한 도난 사건을 해결해주는 이 팀에 시민들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지난 2월 서울 송파경찰서에 자전거 도난 신고를 했던 한 공익근무요원은 "20만원도 안 되는 도난 사건인데도 빠르게 해결해 준 경찰에 놀랐다"는 글을 경찰서 자유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범죄수사팀을 마치 심부름센터처럼 여기는 일부 시민 때문에 수사팀원들이 교통카드·장독 뚜껑 등을 찾으러 다니는 웃지 못할 촌극(寸劇)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아파트 화단에 묻어 둔 장독 뚜껑을 도난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있다"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내색을 했다가 민원이라도 넣을까 봐 속으로만 삭인다"고 했다. 다른 경찰서 관계자는 "빵집 주인이 '1800원짜리 빵 1개가 없어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4500원짜리 과자 하나를 도둑맞았다'고 신고한 일도 있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26)씨는 카페에서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충전기를 자신의 것으로 혼동해 집에 가져갔다가 충전기 주인이 생활범죄수사팀에 신고하는 바람에 지난 22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요즘 우산, 휴대전화 충전기 도난 신고가 너무 많아 경찰도 힘들다고 푸념하더라"고 했다. 회사에 대한 배상책임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수로 잃어버린 업무용 노트북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하거나, 차량에 부과된 과태료를 내지 않으려고 차량 도난 신고를 하는 등 제도를 악용하는 시민도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경찰서들은 기존 5~6개 강력팀 가운데 1~2개 팀을 생활범죄수사팀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력 사건에 특화한 경찰 수사력을 생활형 사건에 투입하는 게 과연 효율적이냐는 얘기도 경찰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이 40대 주부가 잃어버린 교통카드를 찾기 위해 70개 빌딩을 돌아다니고 이틀 동안 잠복한 일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연이 공개됐을 때 '사소한 범죄 해결에 애쓴 경찰에 감동했다'는 칭찬도 있었지만 '경찰력 낭비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과거 개인들끼리 해결했던 일까지 경찰이 수사하게 되면서 경찰 업무가 지나치게 늘어나 다른 치안 분야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예전에는 음식점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면 가게 주인과 피해자가 적절한 선에서 합의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사건들도 도난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CCTV와 카드결제 내역을 살펴보고 일일이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력을 개인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긴급한 사건에 경찰이 투입되기 어려워진다"며 "일선 경찰 입장에선 피해 규모가 미미하다는 이유만으로 사건 접수를 거부하기 어렵다. 경찰청 차원에서 어느 선까지 경찰이 수사에 나설지에 대한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