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집단 등교 거부 사태가 발생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있는 용인시 수지구 상현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23일 이 학교 학생 979명 중 769명이 등교하지 않은 데 이어 24일에는 766명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들의 생사(生死)를 위해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3일부터 학생들이 집단으로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상현초등학교 교실 모습.

학부모들이 뿔난 이유는 바로 학교 앞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들의 통학로 때문이다. 왕복 3차로, 길이 200m 이 통학로를 2013년 A건설사가 아파트 공사 현장 진출입로로 사용하겠다고 용인시에 요청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학교 정문 앞에 25층짜리 아파트(2만370㎡·497가구) 건설을 추진해온 A사는 “공사 현장 앞에 위치한 상현초를 빼면 나머지 지역은 모두 아파트 단지와 야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도로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당초 A사 사업은 2010년 도시계획도로 미개설, 학습권 침해 등을 이유로 불허됐다가 2013년 3월 ‘임시 공사용 도로 개설’을 조건으로 승인됐다. 그러다 용인시가 돌연 전임 시장 임기 마지막 날인 작년 6월30일, 추가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조건으로 통학로를 공사용 도로로 사용하는 사업 계획 변경안을 승인했다.

용인시가 사업 계획을 조건부 승인하자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아이들 안전을 위해 통학로를 사수하겠다는 것이었다. 6학년 학부모 배지영(43)씨는 “통학로는 45인승 버스가 한 번에 진입하기도 힘들 정도로 좁아 대형 공사 차량들이 오가면 상당히 위험하다”며 “시와 건설사가 제대로 된 안전 대책 하나 마련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부모들은 시의 승인에 대해 경기도에 행정심판을 제기했지만, “추가 안전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등하굣길 안전이 위험하다거나 학습 환경이 저해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작년 12월 기각됐다.

올 초부터 상현초 운영위원회·학부모회와 학교 관계자, 건설사, 용인시는 통학 안전 대책 협의를 벌였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공사 차량 차로와 인도의 펜스 분리, 안전요원 배치 등은 학부모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차체가 큰 덤프트럭, 레미콘 같은 경우 사각지대가 많아 특히 저학년들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돌발 사고를 당할 수 있다”며 “안전 대책 치곤 너무나 부실하다”고 주장했다.

건설사 공사 차량으로부터 자녀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사수하겠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현초등학교 학부모들.

착공 지연으로 손해를 입게 된 건설사 측은 결국 이달 중순부터 주변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주민들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 처사”라며 집단 반발했다. 급기야 항의의 뜻으로 23일부터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한 데 이어 24일 오후 8시에는 학교 인근 공원에서 공사 반대 촛불 집회까지 열 계획이다. 통학로에는 ‘이 길은 불편한 길이 아니라 위험한 길입니다. 당신의 아이라면 이 길을 걷게 하시겠습니까? – 상현초 학부모 대책위원회’라고 쓰인 현수막 등이 내걸렸다. 송경심(49) 학부모 대책위원회 회장은 “애초 계획대로 임시 공사용 도로를 뚫어 사용하거나, 보행로 폭 확장 및 육교 설치 같은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A사 대표는 “행정심판 등을 거쳐 1년 넘게 착공이 지연되면서 입은 손실이 막대하다”고 했다. 그는 “법적 문제를 해결한 뒤에도 주민들과 끊임 없이 협의를 계속해왔는데, 임시 공사용 도로 개설 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제안만 나왔다”면서 “회사 사정상 더 이상은 공사를 지연할 수 없다”고 했다.

용인시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고, 법적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건설사의 공사를 무기한 지연시킬 명분도 없다”면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주민, 사업자와 꾸준히 협의 중”이라고만 했다. 시는 오는 27일로 예정된 주민들과의 협의 결과와 관계 없이 A사의 공사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