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질까.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自轉)하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 때문에 멀리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태양이 동쪽에서 나타나 서쪽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는 왜 돌기 시작했을까. 왜 동에서 서가 아닌, 서에서 동으로 돌까.
◇달과 자전 만들어낸 거대 충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46억년 전 태양계가 탄생하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태양이 만들어진 뒤 태양계에는 태양에 합쳐지지 못한 작은 파편들이 서로 끌어당기고 뭉쳐지면서 점차 커졌다. 그것이 행성이 됐다. 마치 눈덩이가 뭉치면서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등 태양계의 행성 8개와 수많은 소행성, 혜성은 '충돌 전쟁' 당시에 각자 자신이 자리잡은 궤도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가 진행한 '지구의 기원' (출처: 재단법인 카오스)
테이아는 충돌 당시 지구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지구의 오른쪽 부분에 충돌했다. 그 결과 지구는 서에서 동으로, 위에서 보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마치 당구공의 오른쪽 부분을 큐로 치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과 같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도 자전을 한다. 8개 행성 중 금성과 천왕성을 제외한 나머지 행성은 지구와 자전 방향이 같다. 금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돈다. 금성의 왼쪽 부분에 다른 행성이 부딪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만들어질 당시 충돌 강도 등 조건이 달랐기 때문에 행성들의 자전 속도도 제각각이다. 목성은 10시간에 한 번씩 자전을 하지만, 금성은 자전 주기가 243일이나 된다.
◇지구의 자전은 언젠가 멈춘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변하지 않을까. 바꿔 말하면 지구의 하루는 항상 24시간일까. 그렇지 않다. 산호(珊瑚) 화석으로 과거 지구의 하루가 몇 시간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1963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고생물학자 존 웰스(Wells)가 발표한 내용이다. 산호는 낮과 밤에 자라는 속도가 달라, 하루가 지나면 나무의 나이테 같은 한 칸의 얇은 줄무늬가 생긴다. 이 줄무늬의 간격은 여름에는 길고, 겨울에는 짧다. 날짜를 세면서 계절을 따져보면 1년간 얼마나 자랐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 1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이다. 이 공전 주기는 수십억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정하다. 공전 속도를 바꿀 외부 원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4억년 전 산호 화석엔 1년간 400칸의 줄무늬가 있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400일이 지났다는 뜻이다. 1회 공전 시간을 400일로 나누니 하루는 22시간이었다. 이 주장은 3억년 전의 산호 화석에서 1년이 390일, 하루는 22시간 30분이었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루가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계산해보면 1만년에 0.2초씩 느려지고 있다. 75억년 뒤면 지구는 더 이상 돌지 않는 상태가 된다. 물론 그 전에 태양이 에너지를 다 쓰고 폭발하기 때문에 우리 후손은 지구의 자전이 멈추는 장면은 보지 못할 것이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태양이 끌어당기는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전 속도가 미세하게 변한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 속도는 일정하고 뚜렷하게 느려진다. 그것은 지구가 태양계의 행성 중 유일하게 액체 상태의 많은 물을 갖고 있는 데다, 달이라는 큰 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에서는 공기로 인한 마찰이 없기 때문에 한번 돌기 시작한 속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른바 '관성의 법칙'이다. 하지만 지구와 달은 서로의 중력으로 상대를 잡아당긴다. 달이 지구를 잡아당길 때 땅(지각)은 제자리에 있지만 바닷물은 달 쪽으로 끌려간다. 이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 지구상에 있는 물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지구의 지표면과 함께 일정한 속도로 돌 것이다. 하지만 밀물과 썰물은 지구의 자전과 상관없이 지구 표면을 왔다 갔다 하며 지표면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킨다. 돌고 있는 지구 자전을 방해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세하게나마 자전 속도가 느려진다. 화성은 두 위성을 갖고 있지만 밀물과 썰물을 일으킬 액체 상태의 물이 없기 때문에 자전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 기사는 재단법인 카오스의 '기원(origin)' 강연 시리즈 중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최덕근 명예교수가 진행한 '지구의 기원'을 요약·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