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정원 직원 임모(45)씨는 야산 으슥한 곳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목숨을 끊었다. 임씨는 평소 타던 2007년식 빨간색 마티즈 차량 조수석과 뒷좌석에 번개탄을 2장 피워놓고 자살을 한 것으로 경찰은 잠정 결론을 내렸다.
용인 시내의 임씨 자택에서 13㎞ 정도 떨어진 이곳은 임씨가 생전 자주 낚시하러 다니던 저수지 근처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되지 않는 비포장도로 끝에 풀숲이 우거진 곳이다.
임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18일 정오쯤. 임씨의 아내 김모씨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119에 "남편이 새벽 5시쯤 직장으로 출근했는데, 직장에선 '왜 출근을 하지 않느냐'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계속 해도 받지 않는다"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씨는 최근 국정원 해킹 사태가 불거지면서 주말에도 계속 출근해 업무를 봐왔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남편이 집을 나간 지 5시간 만에 실종 신고를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용인소방서는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통해 화산리 인근 기지국에서 임씨 전화기의 마지막 신호가 잡힌 것을 파악하고 일대 수색에 나섰다. 소방대원들은 약 2시간 동안 인근 야산을 뒤진 끝에 임씨의 빨간색 마티즈 차량을 발견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 관계자는 "임씨는 구두를 신고 정장 바지와 반소매 와이셔츠를 입은 채 운전석에 누워 있었고, 은박 접시 위에 놓인 번개탄 2개가 각각 조수석과 뒷좌석에 있었다"고 전했다. 소방 관계자들은 심전도 검사를 통해 임씨의 사망 사실만 간단히 확인하고 사건을 경찰에 인계했다.
현장 검증에 나선 용인 동부경찰서 형사들이 임씨가 남긴 유서 3장 등을 통해 그가 국정원 직원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유서는 각각 가족, 부모, 국정원 상관 앞으로 보내는 내용이었다. 이날 임씨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는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큰딸에게 당부하는 말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의 시신은 이날 밤 용인의 한 병원에 안치됐다. 병원을 찾은 임씨의 아버지는 "이런 일을 저지를 애가 아닌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임씨의 아내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평소에 '업무적으로 힘들다'는 말은 했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유족은 사건 당일엔 유서 공개를 거부했다. 하지만 국정원과 경찰의 설득 끝에 유가족은 19일 오전에 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병호 국정원장과 김규석 3차장은 이날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19일 오후 강원도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임씨 시신에 대한 부검이 진행됐다. 국과수는 "전형적인 일산화탄소 중독사"라고 밝혔다. 경찰은 유서의 필적을 임씨 아내에게 확인한 결과 '남편 필적이 맞다'는 답변을 받았으며, 조만간 정식 감정을 거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