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사주를 처음 본 것도 10여년 전의 일인데, 점집을 취재하는 기획이 내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태어난 날짜와 시간으로 한 사람의 운명을 점친다는 게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던 때였는데, 취재를 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사람들은 왜 저 하늘의 별을 보며 운명을 점치고 점성술이란 걸 만들었을까. 어째서 타로 카드를 들고 누군가의 마음속 풍경을 들여다보고, 신명하다는 점쟁이에게 신점을 보고, 역술가가 펼쳐놓는 사주 이야기에 귀 기울일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종교에 시니컬한 사람일수록,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정치가나 사업가일수록 용하다는 '점집'의 번호 한두 개는 전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청담동 연 선생, 신림시장 고 보살, 이태원 현주네, 연희동 신 선생 얘길 한참 들었다. 올해 결혼할지, 직장을 옮겨도 될지, 연재를 시작해도 될지에 대해 이런저런 얘길 했는데 사람 고민이라는 게 비슷비슷해서, 어쩌면 인생의 기출문제에 대한 해답도 이미 나와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싶었다.
나는 보살, 선생, 도사, 도령이라는 신통한 사람들의 이름을 한가득 적어가지고 나오다가 혼자 청계천을 걸었다. 메르스 때문에 비교적 한가해진 명동을 지나 청계천까지 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막 롯데백화점 맞은편에서 청계천 쪽으로 건널목을 건너려다 천막으로 된 작은 점집 하나를 발견했다. 천막 안에는 남자 한 명이 있었고, 뭔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영화 '카페 느와르'의 주인공 신하균을 닮은 남자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 영화의 장면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안될 사랑에 매달리는군. 자네 사랑은 이미 자네 손바닥을 벗어났네. 미안한 얘기지만 자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두 번째 자리네. 그냥 그 자리에 머물게나. 자네가 오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질걸세. 명예도 지위도 박탈당할걸세. 뜨거워질수록 차가워질걸세. 하나가 떠나고 하나가 남을걸세. 이게 자네 사랑의 운명일세. 그러니 눈을 뜨지 말고 그대로 감고 있게. 해를 보지 말고 달 그림자 밟으면서 별을 헤아리게."
선글라스 낀 나이 든 점쟁이가 남자에게 해주는 이 말은 그의 '애정운'이다. '카페 느와르'의 음악교사 영수(신하균)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여자(자기 반 학생의 학부모)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남편이 돌아왔으니 헤어지자는 여자의 이별 통보를 받은 후 공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남자에게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미연이란 이름의 연인이 있지만 그녀에게 마음이 떠난 지 오래다. 대신, 미연은 떠난 영수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곁을 유령처럼 맴돈다.
이별 후, 영수가 청계천 주위를 떠도는 선화라는 이름의 여자를 '알아보게' 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다. 그녀 역시 상실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치한으로부터 구해주면서, 그는 선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는 1년 전 자신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여관에 묵은 한 소설가를 청계천 다리 위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책에서 읽은 말인데요. 커피를 마시는 건 체념이래요. 사람마다 견딜 만한 지옥이 하나씩 있는데, 커피를 마시는 건 비교적 아늑한 지옥일지도 모른대요."
떠나야 한다며 뒤돌아선 남자는 선화에게 1년 후에도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청계천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그리고 약속한 1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선화의 순수함에 반한 영수는 그녀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나타나지 않은 남자 때문에 낙담한 그녀에게 편지를 쓰라고 말해주고, 남자가 머문다는 곳에 직접 편지를 전달한 것도 그였다. 편지를 받았는데도 나타나지 않은 남자 때문에 낙담한 선화를 위로하다가, 그들은 먼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의 운명을 점쳤던 점쟁이의 말처럼 달 그림자를 보면서 함께 별을 헤아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저 너머, 청계천 다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소설가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미련 없이 그의 곁을 떠난다.
정성일의 영화 데뷔작 '카페 느와르'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기반으로 세워진 탑이다. 죽음에 관한, 더 나아가 죽음의 맞은편에 선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 때문에 자살한 베르테르와 도스토옙스키의 실제 죽음의 풍경은 주인공 영수에게 짙은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사랑을 잃은 자들의 밤'이란 카피처럼 영화의 대부분은 흑백이거나 밤의 풍경을 담고 있다. 실연당한 사람들에게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상의 시차는 이미 저 멀리 사라져 버린 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영수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을지로를, 광화문을, 청계천을 걷는다. 나는 그 지역을 내 멋대로 '올드 시티'라 부르길 좋아했고, 사대문 안은 오래된 서울의 옛 모습이 조금쯤 남아 있어 언제든 나를 과거로 회귀시켰다. 청계천에서 점 보는 남자를 본 후, 나는 그곳에서 영수의 그림자를 다시 한 번 봤다. 러닝 타임이 3시간을 훌쩍 넘는 이 영화의 처음은 이미 여러 번 본 터라 기억에 남았다. 영수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받던 장면이었다.
비슷한 사랑에 빠졌던 한 남자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그는 상대 여자 때문에 자신의 사주를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날 사주에 '물'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녀에게 그 말을 전해주고 싶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에 따르면, 그녀의 사주에는 나무가 많아서 언제나 물이 필요했는데, 자신의 사주를 보니 그녀에게 빠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고 수긍했다.
사랑을 잃은 자들을 위로해주는 건 가녀린 천막 안 촛불과 낮게 흐르는, 용한 점쟁이들의 흘러가는 듯한 말뿐일까.
"당신 사주에는 달빛이 있네요. 호롱불 빛 같은 따뜻하지만 차가운 불이에요. 거대한 삼나무 숲이 있는데, 달빛이 그 위로 쏟아지고 있어요."
나는 내 사주를 시처럼 노래하듯 말한 한 여자를 떠올리다가, 그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시간은 모든 걸 변하게 하니 새로운 사랑도 나타날 거라고, 가끔 나조차도 믿지 못할 그 말을 그에게 위로처럼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