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발생한 경기 수원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은 밤낮없이 사람들이 넘쳐나는 경기 남부의 대표적 번화가인 수원역 앞 ‘로데오 거리’에서 시작됐다. 40대 남자가 술에 취해 거리에 쓰러져 있던 피해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사실이 드러나자 시민들의 충격이 크다. 인근 주민 김모(55)씨는 “행인도 많았을 텐데 젊은 여성이 보호받지 못하고 끔찍한 범죄에 희생됐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피해자·용의자 모두 숨지는 바람에 범행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16일에도 주변 CCTV 조사 등을 통해 범행 과정을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살해된 피해자 김모(22)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는 목이 졸려 사망했다는 구두 소견이 나왔다. 실종 33시간 만에 발견된 김씨의 시신에는 전신 타박상이 보였다. 그러나 성폭행 여부 등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정밀 감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의 수사에서 김씨가 용의자 윤모(45)씨에게 납치되고 살해된 과정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김씨의 실종은 14일 오전 1시 18분쯤 남자 친구 손모(22)씨가 인근 파출소에 신고하면서 포착됐다. 두 사람은 전날 오후 5시 30분쯤부터 약 4시간 동안 다른 친구 2명과 로데오 거리 음식점에서 어울렸다. 주량을 넘겨 만취하는 바람에 거리에 쓰러져 함께 잠들었다. 손씨는 “어떤 남자가 ‘여자가 토했으니 물티슈를 사오라’고 깨워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둘 다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추적에 나선 결과 김씨의 모습은 이보다 앞서 0시쯤 실종 추정 지점에서 약 500m 떨어진 경기도청 앞 도로변 건물 지하주차장 CCTV에 남아있었다. 용의자 윤씨가 근무하는 건설업체가 입주한 건물로, 윤씨가 김씨로 보이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이 흐릿하게 잡혔다. 경찰은 주변 CCTV를 분석, 윤씨가 로데오 거리 인근에서 김씨를 차량에 태워 이곳으로 끌고온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윤씨가 건물 3층 남자 화장실에서 김씨를 성폭행하려 했고, 김씨가 격렬하게 저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화장실은 변기와 바닥을 접착하는 석고가 모두 떨어진 상태였고, 김씨의 왼쪽 신발과 손거울도 발견됐다. 지하주차장 CCTV 화면에는 오전 1시쯤 윤씨가 자신의 승용차 조수석에서 김씨 시신으로 보이는 물체를 트렁크로 옮겨 싣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이후 수색 중 지하주차장에서 김씨 지갑을 발견했으며, 김씨의 휴대전화는 약 50m 떨어진 하수구에서 찾아냈다.
윤씨는 시신을 트렁크에 실은 뒤 곧바로 평택 진위면으로 이동해 시신을 배수지 인근 야산에 버렸다. 이어 용인의 자택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오전 4시쯤 집을 나서 다시 평택에 들른 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충주를 거쳐 원주로 이동한 사실이 CCTV 분석에서 포착됐다.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해 동선을 추적하는 동안 윤씨는 이날 오후 5시 40분쯤 원주의 한 저수지 부근에서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피해자 김씨 시신은 15일 오전 9시 45분쯤 경찰에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성범죄 전과가 없었고, 아내와 중학생 아들이 있는 가장이었다. 윤씨는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아내와 직장 동료에게는 범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