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의회에 서울 시내 1300여개 초·중·고교 시설을 지역 주민 등에게 개방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교육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9일 서울시의회 교육위 황준환 의원(새누리당)은 '서울시립학교 시설 개방·이용 조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서울 학교들이 교실이나 강당, 체육관 등 시설을 '교육·체육·문화' 활동에 한정해 주민에게 빌려주는데, 이 조항을 없애고 모든 경우에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골자다. 황 의원 측은 "지금은 학교 시설 이용을 허용하는 범위가 특정 활동에 국한돼 있는데, 지역 주민의 학교 시설 이용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 아수라장 될 것" 학부모 반발

이렇게 되면 종교 단체나 정당, 정치 모임 등 다양한 단체들이 학교에 일정한 사용료만 내면 체육관이나 강당, 교실 등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선거 기간에 후보자들이 운동장이나 체육관 등에서 유세를 하거나 종교 단체가 강당 등을 종교 행사장으로 쓰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에 대해 학부모 단체들은 "조례에서 '교육·체육·문화 활동'을 삭제하면 학교는 각종 종교·정치·스포츠 행사 등으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국교총도 "지금도 학교에 외부인 출입 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아 도난이나 시설 훼손, 학생 폭행 같은 심각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외부 단체에 무분별하게 학교 시설을 내주면 학생 안전은 물론 교육 활동에도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수년 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이 납치·성폭행 당한 '김수철 사건'을 비롯해 이달 초 본드에 취한 40대 남성이 서울 한 초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성추행하는 등 여전히 학교 내 외부인 침입 범죄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조례 개정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공공 재산 vs 학생 안전

학교 시설 개방을 찬성하는 측은 "학교는 국민 세금으로 지은 공공 재산"이라고 말한다. 한 서울시의회 의원은 "'우리 세금으로 학교를 지어놓고 왜 우리가 못 쓰냐'는 주민들 민원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학교가 개인이나 단체 등에 일정한 사용료를 받고 시설을 빌려주면 학교 측도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학교들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주장했다.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 시설 개방 후 노숙자들이 운동장에서 술 마시고 놀기도 하고, 주말이 지나면 교실 유리창이 깨져 있기도 하는데 조례를 바꾸면 학교 안전망이 지금보다 더 뚫릴 것"이라고 했다.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 교장도 "학교 강당을 지역 체육 동호회에 한 달에 네 번 빌려주고 30만원 받고 있는데 전기세, 냉방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미국 학교들은 등·하교 시간 외엔 학교를 일절 외부에 개방하지 않는다. 학교 시설을 빌려줄 때는 학생 교육 활동 등에 도움을 준 비영리단체들을 중심으로 하고, 해당 행사가 학교나 사회에 반드시 이점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또 학교 시설을 이용할 때 음료나 음식, 유리병 등 소지를 금지하는 등 이용 규정도 까다롭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학교 담장 허물기(학교 공원화)' 사업을 벌이면서 외부인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2012년 서울 시내 한 사립 초교 수업 시간에 10대 중퇴생이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교육부가 학교 안전 정책을 내놨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학교 시설 개방 문제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교육권과 안전권을 최우선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