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주요 수출품은 농산품과 섬유제품이기 때문에 첨단기술산업 중심인 한국과 경쟁관계인 산업 영역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당장 FTA를 체결해도 될 정도로 한국은 파키스탄의 이상적인 FTA 상대입니다.”
지난해 4월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한국 총리로는 처음으로 파키스탄을 방문했다. 정 총리는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만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한국과 파키스탄간 투자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쿠람 나스디르 칸 상무부 장관은 한국 정부와 후속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조선비즈는 8일 칸 장관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나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칸 장관은 정부간 합동무역위원회(joint trade commission)를 설립하고 첫 회의를 개최한 것을 이번 방한의 최대 성과로 꼽았다. 그는 “정부의 무역 담당 부처간 교류는 대사관을 통한 경제 협력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한국과 파키스탄간 경제 협력의 기대효과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고, 다양한 무역 관련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칸 장관은 한국 정부가 여러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데 적극적인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그는 “파키스탄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FTA에 대해 논의할 경우, 한·미 FTA 과정과 내용을 많이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파키스탄이 FTA를 체결한 국가는 중국,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등 3개국 뿐이다.
-FTA를 체결한 나라가 적으면, 수출경쟁력면에서 상대적으로 밀리지 않나.
“그래서 FTA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동향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한국은 중국, 인도, 터키, 파키스탄과 FTA를 추진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FTA를 진행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아직 한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지만, 한·중 FTA가 체결되면 파키스탄·중국 FTA를 통해 한국시장과 간접적으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파키스탄은 주요 수출시장 중 하나인 유럽연합(EU)으로부터 일반특혜관세(GSP)를 적용받는 중이다. 앞으로 9년 동안 관세율이 낮아지고, 특혜관세를 적용받는 범위도 전체 교역품의 90%로 확대된다. 관세율은 0%로 떨어질 것이다.”
-한국과 FTA를 체결할 때 쟁점이 될 만한 사항이 있나.
“한국과 파키스탄은 경쟁 산업이 거의 없다. 농산물과 섬유 제품이 파키스탄의 주요 수출품이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농업이 주력인 국가와 FTA를 추진할 경우 타결이 쉽지 않다. 반면 첨단기술 산업 중심인 한국과의 협상에서는 국내 산업 보호와 관련된 문제가 적다. 파키스탄과 한국의 산업구조는 상호보완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FTA를 체결하기에 최적의 상대고, 당장 FTA를 시행해도 될 정도다. 무역장벽이 낮아지면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파키스탄에 진출할 수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지금은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강하다. 하지만 FTA가 체결된다면 삼성전자의 가격경쟁력이 지금보다 강해질 것이다.”
-앞으로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면 민간 부문에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나.
“현재 파키스탄과 한국간에는 직항편이 없다. 아부다비나 태국 방콕 등을 경유해야 한다. 이번 방한에서 대한항공 관계자들과 만나, 서울과 파키스탄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직항편을 운항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한한공과 공동으로 연구팀을 구성해 한국-파키스탄 노선의 상업성을 분석할 계획이다.
파키스탄에 취항하면 한국 항공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서구 국가로 가는 비행기가 파키스탄에 경유할 수 있고, 반대로 파키스탄에서 한국, 일본, 호주 등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으로 가는 승객들을 태우기도 좋다. 파키스탄에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가는 항공편은 선택지가 적기 때문에, 파키스탄 노선은 수익이 날 만한 구간이다.”
-현재 파키스탄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은 무엇인가.
“최대 불안요인은 (이슬람)극단주의 운동이다. 파키스탄 경제는 10년 넘게 극단주의 집단의 테러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테러에 대한 우려 때문에 투자자들이 파키스탄의 상황을 불안하게 보고, 외국기업들도 파키스탄에 진출하는데 소극적이었다. 항공사들이 운항을 중단한 탓에 파키스탄으로 통하는 직항 노선도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파키스탄 정부는 군사작전을 포함해 극단주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했다. 테러가 발생하는 빈도가 이전보다 줄었다. 파키스탄의 안전 수준은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두번째로 전력 부족 문제가 크다. 파키스탄 정부는 발전소를 추가로 지어 전력 생산량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석탄,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화력발전소와 풍력발전소 등을 신축할 예정이다. 전력을 해외에서 수입하기도 한다. 타지키스탄에서 중국을 거쳐 전력 1000메가와트를 수입한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올해 파키스탄의 신용등급을 Caa1에서 B3로 상향 조정하고, 등급 전망도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B3 등급은 채권시장에서 여전히 투기등급에 해당한다. 파키스탄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파키스탄의 신용등급 전망은 지난 2002년에 ‘부정적’으로 추락했지만, 이후 해마다 개선되고 있다. 2014 상반기에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됐고, 올해엔 ‘긍정적’으로 조정됐다. 내년 초, 이르면 올해 말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파키스탄의 신용등급을 추가로 상향조정할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갖춘 점이 신용등급에 좋은 영향을 줬다.
물론 신용등급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조달비용은 여전히 많이 든다. 테러 문제가 해결되면 파키스탄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낮아져 신용등급도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파키스탄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개혁안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2017년이 되면, 국제 경제에서 파키스탄의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기회도 있나.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중국 정부가 고속도로와 가스관, 발전소 등을 지을 자금을 지원하고 중국 국영기업들이 건설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지만, 외국 기업에게도 기회는 열려있다. 자금조달과 건설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한국 건설사들도 여럿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CPEC 등을 통해 파키스탄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이 우려스럽지는 않은가.
“중국은 파키스탄에게 좋은 교역 상대이고 경제적인 협력 대상이다. AIIB나 경제회랑 등은 상호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미국과 유럽이 파키스탄의 최대 수출시장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고 미국과 유럽 경제가 위축되자, 수출 지역을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때마침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고, 중국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협력 상대다. AIIB의 경우엔 한국도 지분율로 4위로, 높은 편인 것으로 안다.”
칸 장관과 인터뷰를 진행한 지 이틀 뒤인 10일, 파키스탄은 인도와 함께 중국이 주도하는 중앙아시아 지역 경제협력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