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2' 낸 공동 저자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는 전작(前作)에서 자기만족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최근 출간된 신작 '미움받을 용기2'(인플루엔셜)는 반대로 '타인과 관계 맺기'를 강조하고 있다.

1편에서 철학자의 가르침을 받았던 청년은 3년 뒤 교사가 되어 돌아와 철학자와 논쟁을 벌인다. 국내 출간을 기념해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은 저자들은 이번 책 주제를 '사랑'과 '홀로서기'(自立)라고 말했다. 1권을 쓸 때와는 마음이 달라진 걸까. 공격적으로 물었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만난 '미움받을 용기 1·2'의 공동 저자 기시미 이치로(왼쪽)와 고가 후미타케가 등을 맞대고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책 속의 철학자와 청년처럼 논쟁하고, 때로는 설득하며 책을 완성했다.

―개인의 자립이 핵심이라면서 2편에서는 사랑과 대인 관계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모순 아닌가.

"모순되는 주장이 아니다. 타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자기 중심성에서 탈피해 자립할 수 있다. 행복은 대인 관계에 들어가야 느낄 수 있다. 남을 도울 때 느끼는 '공헌감'을 통해 우리는 자기의 가치를 확인하고 용기를 갖게 된다."

―그러면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인가.

"타인에게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성숙한 관계는 인생의 주어를 '나'에서 '우리'로 바꿔가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해지면 결국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마라톤을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완주'나 '빨리 달리기'가 목적이었다가 어느 순간 '이 사람을 이기자'로 바뀌지 않나. 그것은 성숙한 관계가 아니다."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 예를 들어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나.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2편을 보고서 기존 주장의 동어 반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전혀 동떨어진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1편이 지도(地圖)였다면, 2편은 '나침반'이다. 1편에서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이고, 남의 인정 욕구를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면, 2편에선 대인 관계에 들어가 실제 행복해지는 법을 다뤘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독 한국과 일본·대만 같은 나라에서 당신들의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가부장제의 전통이 강한 유교권 국가 젊은이들은 서열과 나이, 평판, 남의 이목(耳目) 등 여전히 남아있는 수직적 조직문화에서의 대인 관계를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기사 더보기

열등감에 사로잡힌 2·30대에게 '미움받을 용기' 인터뷰 中에서

기자 :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포기하라고 했다.

기시미 :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자기가 만족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거다. 인정 욕구를 없애기 위해선 남에게 공헌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면 된다. 상대방의 감사를 기대하지 않고 남을 위한 일 자체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거기서 용기가 생기는 거다.

기자 :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시미 : 남의 눈이라는 것이 항상 올바르다면 문제가 없겠지. 그러나 그 시선이 올바르지 않다면 사람들이 모두 다 그른 쪽으로 가 버리는 거다. 여행 중 절벽을 만나면 집단 투신한다는 나그네쥐처럼 말이다. 남의 눈이 과연 올바른지를 판단하는 힘이 필요하다.

늙어감이 두려운 4·50대에게 '늙어갈 용기' 인터뷰 中에서

기자

: 우리는 모두 늙고 병들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기시미

: 그렇지만 자신의 존재만으로 타자(他者)에 공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만 보는 사람이 많지만 젊거나 늙거나 사람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아들러는 이를 '보통으로 있을 수 있는 용기'라고 했다. 나는 치매를 오래 앓았던 아버지를 간병했는데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도 나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 기뻤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는 공헌감을 갖도록 내게 공헌을 한 것이다.

기자 : 병든 아버지가 아들이 공헌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니 그저 '말장난' 처럼 느껴진다.

기시미 : 역할이 없어졌다고 해서 인간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이 없어지고 돈을 벌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을 효율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영어 개인(person)의 어원인 그리스어 페르소나(persona)는 가면이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역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가면을 벗을 때 나타난다. 수직 관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가면을 쓸 필요가 없어져 진정한 자신이 된다고 생각하면 늙고 병들어도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미움받을 용기 & 늙어갈 용기에 나오는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 (1870 ~ 1937)는

빈 정신분석협회의 핵심 일원으로 프로이트와 함께했지만, 무의식과 의식을 분리해 인간을 바라보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반대해 그와 결별하고, 인간을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없는 ‘전체’이자 ‘하나’라고 보는 개인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러면서 인간은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존재이며, 인간의 모든 행동엔 어떤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열등감’이란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으며, ‘인간은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발전해나간다’고 보았다. 데일 카네기, 스티븐 코비 등 자기 계발 멘토들에게 영향을 주어 ‘자기 계발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프로이트의 원인론 vs. 아들러의 목적론

아들러의 목적론은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반박하면서 나왔다. 미움받을 용기 첫장에 등장하는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은 과거에 있었던 안좋은 기억이나 마음의 상처가 현재의 영향을 끼친다는 원인론을 근거로 한다.  프로이트의 주장과는 달리 아들러는 불행했던 경험이나 기억이 현재를 결정할 수 없고, 현재의 목적만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목적론을 폈다. 현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험 자체보다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왜 사람들은 아들러의 심리학에 열광하나?

이 책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14년. 대중은 "보고 싶다"는 문자 하나를 지우려고 공간 이동과 시간 멈춤을 감행하는 '별에서 온 그대'의 판타지부터 300여명이 숨진 세월호 비극, 1700만명이 본 영화 '명량' 등 엄청난 진폭을 경험했다.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20일 종영한 드라마 '미생'에 빠진 직장인들은 "너는 미생(未生)이냐 완생(完生)이냐"를 안부처럼 물었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들러가 읽히는 까닭에 대해 "아들러는 못나고 열등감 가득한 게 인간의 모습이라는 이론을 펼친 심리학자"라며 "'매사에 긍정하라'는 긍정 캠페인이 식상한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 아닐까"라고 진단했다.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는 "SNS에서 '좋아요'나 'RT(리트윗)'를 누르며 '싸구려 인정'에 목매어 사는 사람들이라면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했다. 예스24에서 '미움받을 용기' 구매자는 30대 여성(22.9%)이 가장 많고 40대 여성(17.9%), 30대 남성(15.5%)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