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영화 '닥터 지바고'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한국에서도 크게 사랑받은 세계적 배우 오마 샤리프(83)가 10일 이집트 카이로의 병원에서 지병인 심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이국적 용모와 우수어린 눈빛, 이와 맞아떨어지는 선 굵은 연기를 앞세워 고국 이집트에서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그는 20대 후반 자신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62년 개봉을 앞두고 제작중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용감한 아랍 부족 지도자 셰리프 알리 역(役)에 캐스팅된 것이다. 원래 이 역할은 다른 배우가 캐스팅된 상태였다. 그러나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린 감독은 배우의 '눈동자 색깔'이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며 결국 이 배우를 퇴출시켰다. 마땅한 배우를 찾기 위해 카이로까지 찾아간 영화 제작자 눈에 든 것이 오마 샤리프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어 3년 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대하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닥터 지바고'에서 주연인 '유리 지바고'역을 맡았고, 영화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인 러시아 의사 유리 지바고로 출연한 오마 샤리프(오른쪽).

그는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우수 어린 터프가이'를 대표하는 배우로 각인됐다. 특히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는 브랜드 사용 허가를 받고 1992년부터 '오마 샤리프'라는 담배를 출시하기도 했다.

오마 샤리프는 1960년대 이후에도 로맨틱 코미디·역사물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 두 편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역설적으로 두 편의 영화만으로 현대 영화사에 족적(足跡)을 뚜렷이 남긴 셈이다. 말년에 샤리프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았으며 최근에는 기억 상실 증세까지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