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피해자 부모 재정신청에 대한 재항고 기각

1999년 발생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이 대법원 결정에 따라 결국 영구 미제(未濟) 사건으로 남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황산 테러를 당해 숨진 김태완(사망 당시 6세)군의 부모가 “이웃 주민 A씨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재정신청(裁定申請)의 재항고를 기각했다고 10일 밝혔다. 재정신청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직접 사건을 재판에 넘겨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이번 대법원의 최종 결정에 따라 공소시효(公訴時效)가 완전히 끝났다.

태완이 목소리, 7월 7일 공소시효를 멈출 수 있을까… 진술분석으로 인정된 태완이의 목소리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는 1999년 5월 20일 태완군이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중 대구 동구 효목동의 골목에서 한 남성이 뿌린 황산을 온몸에 뒤집어쓴 사건이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태완군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이 겹치면서 49일 만에 숨졌다. 태완군은 숨지기 전 “황산을 덮어쓰기 전 이웃집 아저씨(A씨)가 나를 불렀다”고 말했다. 골목에서 ‘한 남자’를 봤다는 목격자들도 등장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A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조사했으나 A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2005년 7월 경찰 수사본부가 해체됐다.

태완군 부모와 시민단체 청원으로 2013년 말 수사가 재개됐으나, 여전히 범인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사건의 공소시효(15년)가 가까워졌다. 다급해진 태완군 부모는 공소시효 만료 3일 전인 2014년 7월 4일 A씨를 고소했고, 같은 날 검찰이 A씨를 불기소처분하자 곧바로 대구고법에 재정신청을 냈다. 7월 7일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A씨에 대해선 재정신청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중지됐다.

그러나 대구고법이 올해 2월 재정신청을 기각한 데 이어 대법원도 이번에 재항고를 기각했다. “수사 결과를 번복할 만한 추가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범인이 밝혀져도 처벌할 수 없다. 15년이었던 살인죄 공소시효는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25년으로 늘어났으나, 태완군 사건은 개정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15년이 적용된다.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태완군 부모와 시민단체 등은 살인죄 공소시효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올해 2월에는 일명 ‘태완이법(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태완군의 어머니 박정숙(51)씨는 10일 본지 통화에서 “대법원이 태완이법 통과 이후에 결론을 내렸어도 됐을 텐데, 마지막 희망을 꺾어버린 것 같아 아쉽다”며 “혹시라도 범인을 잡을 다른 방법이 없을까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꼭 태완이법이 통과돼서 억울하고 가슴 아픈 범죄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울먹였다. 이 사건 재정신청을 담당했던 박경로 변호사는 “모든 공소시효를 다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폐지하자는 것”이라며 “국회가 활발히 논의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개정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4번째 유명 영구 미제 사건이 됐다. 경기도 화성에서 여성 10명이 성폭행·살해당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1986~1991년)’,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나간 소년 5명이 실종된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1991년)’, 이형호(당시 9세)군이 납치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1991년)’ 등에 이은 것이다. ‘3대 미제’로 불리는 이 사건들은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