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자’로 불리는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 속도와 물량에 지친 현대인에게 ‘단순한 삶’은 로망이죠. 미국 문학의 고전이자 단순한 삶의 상징인 ‘월든’을 추천하면서, 보통은 요청했던 200자 원고지 8장보다 두 배나 더 긴 분량을 보내왔습니다.
Books 지면에 예외적으로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입니다. 5월 20일자 칼럼
에서 ‘독서광 서경배’의 일단을 소개했지만, 신문 지면에 서 회장이 직접 글을 쓴 건 처음입니다. 자신의 독서 습관과 지향, CEO로서의 개인적 고민, 그리고 왜 지금 ‘징비록’인지에 대한 고백과 성찰을 읽을 수 있습니다. 원래 경어체로 써 보낸 원고이지만, 다른 필자와의 형평을 고려해 하오체로 옮겼습니다. 원문은 역시 더 많은 분량입니다. 보통과 서 회장의 원고 전문은 조선닷컴(chosun.com)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서 회장의 독서 멘토이자 책 친구 중 한 분이죠. 심야에도 전화로 토론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진화심리학자로 이름났지만, 이번엔 중국의 당시(唐詩)에의 매혹을 고백했군요. ‘7년의 밤’ ‘28’로 이름난 소설가 정유정씨는 ‘이웃집 살인마’를 추천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소설이 아니라 진화심리학 책입니다. 두 분이 약속한 듯 서로의 전공을 탐했네요.
/어수웅·Books 팀장
CEO고민, '징비록'서 답을 얻었다
저는 책을 읽는 것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 읽기에 대한 제 나름의 계획과 목표를 나침반 삼아, 청년 시절에는 해마다 40권 정도의 책을 꼭 읽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바쁜 일상과 업무에 밀려 채 20권의 책을 탐독하기도 빠듯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과 책 속의 인상적인 구절 등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꼼꼼히 메모해서 책의 가장 앞 장에 끼워 놓곤 합니다. 많은 책을 일일이 다시 꺼내어 읽을 수 없기에, 책 속의 메모를 찾아보며, 그 책을 읽었던 당시의 저로 오롯이 돌아가 보기 위함입니다.
이런 제가 올여름 휴가 동안 반드시 다시 한 번 정독하려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의 한가운데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전장을 진두지휘한 또 한 명의 영웅,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입니다.
연초부터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를 통해 류성룡 선생의 리더십이 재조명되며 기존보다도 더 다양한 시각의 징비록 관련서가 서점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제가 추천하고자 하는 도서는 바로 제가 1년여 전에 읽었던 연세대학교 송복 명예교수님의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입니다.
책의 저자인 송복 교수님은 여든을 눈앞에 둔 정치사회학자로 지난 50여 년간 징비록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400년 전 류성룡 선생이 온 힘을 다해 남긴 한 글자 한 글자 속에 깊숙이 담겨있는, 2015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를 류성룡 선생을 대신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 여름 제가 다시 징비록을 손에 든, 그리고 여러분께 이 책을 추천해 드리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징비록은 참담하기 짝이 없는 ‘실패’의 기록입니다. 조선의 분할을 노리는 왜나라와 조선을 요동방어의 울타리로 삼으려는 명나라가 조선 땅을 전쟁터로 삼아 1592년부터 벌인 7년여의 참혹한 유린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슬픈 역사이기에 많은 사람이 빨리 잊으려 했지만, 류성룡 선생은 다시는 그와 같은 부끄러운 역사가 답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치욕스런 역사까지도 오롯이 새겨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604년 저술을 마칩니다. 그것이 바로 선대의 실책을 철저히 징계하여, 후대의 앞날을 미리 경계시킨다는 뜻을 담은 징비록입니다.
지난해 봄 저는 깊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1945년부터 선친께서 일구기 시작한 저희 아모레퍼시픽의 창립 70주년(2015년 9월 5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며 많은 생각에 휩싸여 있던 그때 제가 만난 책이 바로 이 책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의 요체는 나를 벗어난 불가항력적인 환경의 조류를 탓하고 무작정 비통해하기 보다, 나를 먼저 돌이켜보고 책망함으로써 엄격하게 징비할 것을 채찍질하는 데에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류성룡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징비(懲毖)하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세상이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위기가 온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엄격하게 징비하는 뚝심을 기르며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조급증과 급망증을 버리고 항상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 제 깊은 고민을 깨우는 혜안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삶이라는 게 항상 잘되는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늘 잘되란 법은 없습니다. 반대로 삶은 또 언제나 새로운 기회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하고 자유로운 사람은 잘될 때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겸손은 ‘창밖’을 바라다볼 수 있는 여유입니다. 잘될 때는 창밖을 보며 나에게 도움을 준 고마운 분들이 누구인지 생각하고, 주변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잘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잘되지 않을 때는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다듬고 다시 준비하는 자세로 무엇을 고쳐야 할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대로 된 방식으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을 항상 돌아보고 엄격하게 징비하는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400년 전 류성룡 선생이 온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남긴 징비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올여름 징비를 가슴에 새기고,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소중한 역사를 당당히 만들어 나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
충만한 自然… 단순한 삶을 찬양하라
올여름에는 19세기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을 것이다. 단순한 삶을 찬양하는 책이다.
소로는 자신이 현대 문명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에 기대지 않고도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보스턴의 집 근처에서 적당한 땅을 찾아내 조그만 오두막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2년 가까이 지냈다. 그가 피신한 것은 번잡한 생활을 피해 숲 속에서 느긋하게 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기 위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내가 숨을 거둘 때 깨어 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로는 대부분의 사람이 삶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존에 살던 방식에 길들어서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통상적인 삶의 방식을 선호했기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호숫가 오두막에서 얼마간 지낸 뒤 소로는 사뭇 다른 생활양식을 찾아냈다. 우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은 실제로 아주 적다. 얼마나 많은 물건을 가질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적은 물건으로도 살아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노동 또한 불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진정 중요한 일은 없다.” 30마일(약 48㎞)을 걸어가려면 하루가 걸린다. 그런데 그 거리를 기차로 여행하는 비용을 벌려면 하루 이상을 일해야 한다. 기차를 타는 대신 걸으면 자연풍광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명상의 시간도 얻을 수 있다. 시간은 모름지기 그런 데에 써야 한다.
소로에 따르면 과학기술 역시 불필요한 경우가 많다. 발명품의 실용성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개인의 행복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발명품들은 그저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장난감이기 마련이고 인간이 진지한 일에 관심을 쏟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서둘러 메인 주에서 텍사스 주까지 자기전신기(磁氣電信機·magnetic telegraph)를 건설하고 있지만 사실 두 지역 사이에는 서로 통신을 주고받아야 할 절실한 이유도 없다.” 대신 소로는 영성이 충만한 자연에 기대를 걸었다. 그는 “늘 자연에서 신을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곤” 했다. 동물과 숲, 폭포 등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생태계 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를 자연 외부의 힘이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자연”으로 인식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넓고, 긴밀히 연결된 데다 도덕적인 문제까지 안고 있다. 소로는 은자(隱者)로 살면서 이런 사회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물질적인 세계에 등을 돌리고 검소함을 중시하는 그의 생활은 경제적인 곤란을 겪고 있는 세계에 신선한 통찰을 준다. 세계는 경제적인 위기를 겪을 때마다 소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1930년대 불황기에 그의 철학은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위기에 도달해서야 물질적인 삶에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아마 소로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소설가(번역=변희원 기자)
두보 왕유…唐詩와 고품격 중국 여행
타고난 역마살을 어쩌지 못해 여행이라면 밥 먹는 것보다도 좋아하지만 좀처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삶이 나를 속인 지 오래다. 어쩌다 얻은 촌음에 효율적인 여행을 하려면 기획 여행을 따라가는 게 좋은데 정해진 일정에 묶이는 것 역시 질색이라 그저 애꿎은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다. 세렝게티나 갈라파고스 같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를 찾아 세계 일주를 하자는 언론사의 제안을 손에 쥔 채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있는 나로서는 당시(唐詩)의 고향들을 찾아 중국 전역을 누빈 저자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당나라 도읍이었던 시안에서 시작해 흔히 천당에 비견되는 미향 항저우에서 끝이 난 저자의 여정은 무려 11년에 걸쳐 중국 전역을 종단∙횡단하고도 남는 1만2500km 대장정이었다. ‘중국, 당시의 나라’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에 읽어 내릴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책을 끼고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으로 여행을 떠날 일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천년 역사의 유적과 더불어 이백, 두보, 백거이는 물론, 저자가 가장 좋아한다는 시인 이상은과 중국 시인 중 생태적 감성이 가장 뛰어나 내가 은근히 흠모하는 왕유의 시를 음미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고품격 여행이 될 것이다.
저자는 당나라 유적이 아니라서 대충 훑어보고 떠났다지만 나는 북경의 이화원, 소주의 졸정원, 유원과 더불어 중국 4대 정원의 하나인 청나라 피서산장이 꼭 보고 싶어졌다. 왕유가 그곳에서 지었다는 “창 너머 운무가 옷 위로 피어오르고/휘장을 걷으니 산과 샘이 거울 속으로 들어옵니다”라는 시구를 읽으며 그의 다른 시 ‘죽리관(竹裏館)’이 보여준 정경(情景)의 교융(交融)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 반가웠다. 테마 여행의 백미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이번 여름 만일 중국으로 당시 테마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re-orient)’도 함께 챙겨갈 것을 권한다. “방향을 다시 잡다” 혹은 “아시아로 되돌아오다”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리오리엔트’는 인류의 역사가 또다시 궤도 수정을 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1800년 이전까지 세계경제와 문명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었다는 단언과 함께 프랑크는 세계 문명의 중국 회귀를 주장한다. 중국이 어느덧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 국가가 되면서 중국에 대해 좀 안다는 이들이 섣불리 중국을 규정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은 국토의 면적과 인구의 규모는 물론, 자연 생태와 기후의 다양성, 역사와 문화의 복합성 차원에서 결코 한두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일단 중국의 규모에 기가 죽지만 당시(唐詩)는 그로 인해 나른해진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아예 당나라 지도를 들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장도의 끝에 선 저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중국은 당시의 나라라는 결론을 내린다. 미국에 정착한 초창기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새들이 미국 하늘을 나는 날 미국은 비로소 영국이 될 것이라며 여러 해 동안 영국에서 셰익스피어의 새들을 잡아다 뉴욕자연사박물관 계단에서 날려보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종종 연설이나 사석에서 당시를 암송하며 본인의 의중을 표현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을 이해하는 분명한 한 축이라면 중국이라는 코끼리를 더듬기 전에 당시에 대한 이해는 필수일 듯싶다.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인간과 함께 진화한 '생존 전략', 殺人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
이 충격적인 주장을 접한 건, 6년 전 여름 어느 밤이었다. 귀밑때기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떨떨했던 기억이 있다. 살인을 찬양 고무하는 책인가, 잠시 의심했던 기억도 난다.
그 무렵 내 책상에는 살인에 관련된 온갖 책과 자료들이 교도소 담장만큼이나 높게 쌓여 있었다. 사이코패스 혹은 프레데터(포식자)라고도 불리는 별종들에게 한창 홀려있던 참이었다. ‘이웃집 살인마’는 그 담장 밑에 깔린 채 잊혀가던 책이었다.
실토하자면, 그때만 해도 데이비드 버스가 진화심리학자라는 걸 몰랐다. 진화심리학 자체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제목과 표지에 낚여 사들인 책에 불과했다. ‘섹시한 옆집 오빠가 알고 보니 살인마였다’ 유의 이야기려니 하고. (‘아찔한 금발미녀’ 표지로 장르를 교란한 출판사는 반성해야 한다)
책을 읽게 된 건, 밤마다 집 안을 무대로 ‘우다다 놀이’를 하던 피 끓는 고양이, ‘나옹이’ 덕택이었다. 녀석은 모두가 잠든 틈을 타 내 책상 위를 날다가 교도소 담장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그 난장판을 정리하던 와중에 ‘아찔한 금발미녀’를 보게 되었고, 무심코 펼쳤다가 앉은 자리에서 밤을 새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잇몸이 근질근질하고 손이 벌벌 떨리는 흥분과 눈이 활자를 쫓아가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조급증을 맛보면서.
“살인은 그 자체로 훌륭한 생존 전략이다.” (화내지 마시라. 여기에서 ‘훌륭한’은 도덕적 관점이 아닌, 진화적 관점에서 사용된 단어다. 우리의 유전자는 도덕적이지 않고, 진화는 도덕적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알려져 있다시피, 진화의 목적은 종족 보존과 개체 번식이다. 이에 반하는 것들은 도태되고 기여하는 것들은 진화한다. 그러므로 ‘훌륭한’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가성비가 높은’과 비슷한 말이겠다.)
데이비드 버스는 서두에서 던진 이 뜨거운 화두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명쾌하게 풀어간다. 더 많은 자원을 얻고, 더 높은 지위를 갖고, 명예를 지키고, 위험한 적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방어하는 데 살인이 훌륭한 대응책이었기에 진화되었음을 조목조목 증명해 보인다. 우리가 진화의 산물이라는 걸 상기시킨다. 읽는 자의 불쾌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에는 살인자의 형질이 기록돼 있다고 선언한다.
그의 주장은 충격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살인을 이러한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는 게 놀랍다. 그러나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 내면의 어둠, 본성의 냉혹한 일면을 이해하는 데 유효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래의 질문들에 근원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인간은 왜 나쁜 짓을, 그중에서도 최고로 나쁜 짓인 살인을 저지르는가. 열 받아서, 미쳐서, 교육이 부족해서, 성장환경이 나빠서 등등의 이유로 설명할 수 없는 살인은 왜 일어나는가. 왜 연쇄살인범의 사냥감은 대부분 여자인가.
여기서 조언 하나. 책을 읽는 동안, 존엄한 인간, 혹은 도덕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잠시 접어두시길 권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짐승’ 중 하나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는 말과도 같다. 세계와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만하면 불편함 혹은 불쾌함을 감수하고라도 한 번쯤 도전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정유정·소설가
다음 주의 휴가특집 2회도 기대해주십시오. 주제는 ‘숨어있는 좋은 책’. 명망 있는 30개 출판사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지난 3년간 출간된 책 중에서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책들을 추천해 달라고요. 자기 출판사 책 하나, 남의 출판사 책 하나. 전체 리스트와 많은 지지를 획득한 리스트를 함께 공개하겠습니다. 베스트셀러의 천편일률적 취향을 사양하는 당신이라면, 조선일보 Books의 리스트와 함께 이번 여름을 서늘하게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