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의 성장통을 그린() 김려령 작가가 이번엔 ‘기간제 결혼’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돌아왔다. ‘직업여성’의 변주, 결혼제도에 대한 새로운 시선, 그 가운데 사랑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이번 작품의 제목은 다.

2007년 동화작가로 데뷔해 성장소설 로 이름을 알린 김려령 작가는 이듬해 로 연타석 홈런을 치며 ‘청소년 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가 2013년 첫 ‘성인소설’ 를 발표했다.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신작 는 굳이 구분하자면 또 한 번의 성인소설이다. 서울 서교동의 창비 인문학 카페에서 김려령 작가를 만났다.

'기간제 결혼'을 소재로 한 신작
신작 는 전작 에 이어 또 한 번 '사랑'이라는 주제를 파고든다. 결혼이라는 틀을, 반려자라는 존재를 비틀어 묘사한 는 회의적이면서도 한 줌 희망적이고 시종일관 건조하지만 애정 또한 느껴진다. 주인공 노인지는 결혼정보업체 내에 비밀리에 운영되는 조직 NM의 일원이다. '기간제 결혼'을 알선하는 회사 NM의 직원들은 NM의 회원들과 일정 기간 부부로 지낸다. 물론 이는 성관계를 포함한다. 좋게 말해 기간제 결혼이지, 성매매나 다름없다.

"학창 시절, 자주 놀러가던 친구네 집 부근에 유명한 사창가가 있었다. 어릴 적 영화에서 묘사된 사창가는 무서운 곳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 오히려 '학교 갔다 오니?', '안녕, 이 동네 사는구나?' 하면서 말을 걸곤 했으니까. 그때 처음 '직업여성'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 이후 소설로 쓰기를 시도했다가 중간에 포기했다. 이걸 다루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기간제 결혼이라는 아이디어와 함께 직업여성이 떠올랐다."

소설 속 직업여성(혹은 남성), 아니 NM의 직원들은 마치 번듯한 직장인처럼 묘사되어 있다. 심지어 아무나 종사할 수 없는 고급 직업처럼 느껴질 정도다.

"결혼에 대해 일부분 알면서도 거리를 두고 말할 수 있는 주인공이 필요했다. 직업여성들에  대해 (기존 편견과) 다르게 이야기하고 싶은 측면도 있었다. 지나치게 폄하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절상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누구나 갖고 있는 하나의 직업, 다만 누구나 선뜻 손 내밀 순 없는 직업으로 묘사했다."

소설은 결혼제도를 상당 부분 비관하는 듯 보인다. "당장의 목마름으로 자판기에서 뽑아낸 배우자", "끝없는 사막을 달리는 것 같았던 결혼. 타고 가는 캠핑카가 아무리 좋아도 오아시스밖에 생각나지 않았던" 등 적나라하게 칼날을 들이대다가도 한편으론 따뜻한 시선을 내비친다. '총천연색이 한 가지 색보다 선명하지 못한 법'이라는 옆집 할머니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이쯤 되니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사람(반려자)을 만나는 것에 정의를 내릴 수는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의 노부부처럼 (백년해로) 갈 수도 있을 테고, 1백 명 혹은 1천 명을 만나고 나서야 진짜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젊은 친구들의 목소리, 60~70대분들의 목소리를 모두 넣었다. 나 역시 결혼은 이렇다, 사랑은 이렇다, 정의 내릴 수 있는 내공도 안 된다. 죽을 때까지도 정의 내리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결국 '사랑하자'는 말을 건넨다. 감동적인 미담을 늘어놓는 대신 김려령만의 방법으로 말이다.
"사랑의 예쁜 모습을 그리며 긍정적 에너지를 보여주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조명했다. 행복할 가능성이 더 많았던 사람들, 당연히 행복해야 했던 사람들이 맞는 불행, 그래서 겪는 아픔, 그럼에도 우리 행복하자, 사랑하자,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동화에서 성인소설까지,
보폭을 넓히다
2007년 두 편의 동화로 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는 이듬해 로 또 한 번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2011년과 2013년에는 소설 와 이 영화로 개봉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말하자면, 김려령의 승승장구였다. 한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가 '동화작가' 출신이라는 걸 아는 독자는 많지 않다. 실제로 그는 대학 시절, 동화가 아닌 소설을 전공했다.

"사실 전공은 소설이다. 동화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교수님의 메일 덕분이다. 졸업식을 앞둔 마지막 종강 날, 동화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메일을 보내셨더라. 아동문학 수업 때 과제로 낸 동화를 보고 메일을 주신 거다.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됐다."
그의 말에 따르면 "뭔지도 모르고 막 쓴" 동화였지만 재능은 곧 눈에 띄었다. 소설로 등단할 줄 알았던 소설과 학생의 진로는 그렇게 바뀌었다. 

"대학 시절, 나는 되게 불순한 학생이었다.(웃음) 소설도 늘 살인하는 것들이었고, 죽여도 깔끔하게 죽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동화를 쓴다고? 나도 믿기지 않았다. 교수님의 메일을 받고 '장르가 나를 선택하는 건가?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다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승의 제안을 계기로, '장르의 부름을 받아' 동화로 등단했지만 소설에 대한 배고픔은 늘 있었다. 뒤로는 꾸준히 소설을 써온 것도 그 때문이다.
"소설이 미련으로 남아 있었다. 근데 동화 외에는 딴 얘기를 못하겠더라. 배신하는 느낌이 랄까. 동화를 쓴다고 해놓고 소설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뭔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근데 안 쓰면 안 되겠더라. 그래서 내 나름대로 합의를 본 것이 '우리 애들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자'는 거였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을 썼고, 가 나왔다."

그러나 동화나 청소년 소설로는 그 본연의 어둡고 파괴적인 내면을 분출하기에 부족했다. 그는 "그때도 외피는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썼지만 뒤로 돌아가서는 여전히 '살인하는' 소설들을 썼다"고 말한다. 결국 2013년 로 한(?)을 푼 셈이다. 는 김려령의 첫 '19금 소설'이다.

" 뒤에 '19금 소설'이라는 말이 붙기도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안 간다.(웃음) 예전에는 청소년 소설, 성인소설 구분 없이 소설이면 (나이에 상관없이) 다 읽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세분화되어 있다 보니 '이 소재는 이쪽에서는 더 안 되겠는데?' 하고 막히면 청소년 소설에서 성인소설로 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신작 는 그의 두 번째 '성인소설'이다. 혹자는 "청소년 소설 작가라는 인식을 벗어나려고 일부러 야한 걸 쓴다"며 비아냥거리는데, 의외로 그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그 말도 일견 맞다. 청소년 소설의 시선만 갖고 있으면 그 작가의 운신도 좁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근데 그 말보다 더 서운한 건 따로 있다. 내가 동화작가라는 걸 아예 모른다는 거다.(웃음) 심지어 최근에도 동화를 발표했는데. 내가 동화 명저가 참 많다. 동화로 상도 두 개나 받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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