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홍역을 겪고 있다. 적절하지 못한 초기 대처와 컨트롤 타워의 부재, 안전 불감증, 한국식 병원 문화 등이 사태 확산의 주범으로 꼽힌다. 모든 국민이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경제적 손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첨단 의학 기구가 없었던 과거에 전염병의 유행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염병, 즉 역병(疫病)이나 역질(疫疾)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1000 여건 이상 나온다.
1411년(태종 11) 5월에는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동안에 경외에 역질이 돌아 백성들이 많이 요사(夭死)하였다'고 했고, 1422년(세종 4) 3월에도 '이달에 서울과 지방에서 큰 역질이 있어, 죽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할 만큼 역질의 유행이 끊이지 않았다. '현종실록'에는 "팔도에 기아와 여역(癘疫)과 마마로 죽은 백성들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 심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전염병이 유행하면 환자를 도성 밖으로 격리하는 조처를 취했다. 도성 밖에서 역병에 걸린 환자를 전담하던 곳은 활인서(活人署)로 의원(醫員)과 의무(醫巫)를 배치하고 환자들을 보살폈다.
왕비가 역병에 걸리면 왕이 거처를 옮기는 등 왕실에도 격리 조치가 있었다. 굿을 하고 역신에게 여제(厲祭)를 지내는 등 비의학적인 방법이 많았지만, 의학적인 치료법도 점차 개발됐다.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은 전란 후 백성을 기아와 전염병에서 구제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근대 의학자 지석영은 종두법을 개발해서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천연두의 퇴치에 공헌했다. 최근에도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출현하여 인간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철저한 방역 대책과 시스템을 확립해서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쉽게 침투하는 상황을 막아야 할 것이다.